10년간 쓴 詩 60편에 담은 자연·일상 속 깨달음
시집 준비하며 시도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느껴
첫 아이를 출산하듯 두려우면서도 행복한 마음

 

김감우 시인

이른 아침, 해를 밀어올리고 홀로 엎드려있는 산을 보면 마음이 저려오곤 했다. 물빛과 하늘빛 온통 찬란하기 그지없는데 해 아래로 숨을 죽인 채 납작 엎드린 산의 가슴께가 통증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풍경은 시 ‘송정바다 일출’로 태어났다. 

첫 시집을 출간했다. 10여 년간 써 온 시 60편을 묶었다. 시를 선하면서, 선한 시들을 자리배치하면서 두 계절을 보냈다. ‘송정바다 일출’은 이번 시집에서 싣지 않았지만 이처럼 나의 시는 주변의 풍경과 함께 호흡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100년 넘게 곡천동문길 골목에 홀로 서 있는 엄나무의 독거라든지, 회랑만 남은 사원으로 드나드는 바람, 바람 지나간 자리에 누운 태화강변의 풀들 등, 내 몸과 함께한 자연은 내게 다가와 시가 됐다.

“과감하게 잘라버리세요.” 이십대에 꽃꽂이 강좌에서 들은 강사의 추상같은 주문도 시가 됐다. 환한 꽃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가지 깊숙이 가윗날을 넣어야 했던 고통스런 순간은 나의 시와 내 삶의 스승이 됐다. 콩이라는 단단한 이름표, 그 안전지대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세상을 향해 발을 딛고 나선 콩나물의 모습도 시가 됐다. “상처는 나이 들면서 주름과 한 몸이 되니 염려 말라”던 진료실 의사의 말도 시가 됐다. 그리고 유년에 간절하게 기다리던 아버지의 답신 등 일상의 체험도 시가 됐다.

매화가 흐드러진 봄날, 속도만이 최선이라 믿고 달리는 고속전철의 질주가 아프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기차 지나가는 길목에 굼슬프다는 수식어를 배치해 둬  백신이길 바라며 시를 썼다. 아마 그 질주는 속도 속에서 휘청거리는 나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굼슬프다는 백신 또한 내 자신을 위한 처방전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 시는 들판에 나가 기도하는 한 노인의 옆에 종일 엎드려 있기도 했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나의 시와 다시 친해졌다. 새벽마다 나를 찾아온 시에게 늦게나마 따뜻한 인사를 나누게 됐다. 소리 내 읽고 또 읽으며 어느새 내가 내 시의 열렬한 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시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절실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찾아온 시를 제때 잘 받아주지 못해 미안했고 부족한 솜씨가 부끄러웠던 탓에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시를 다시 껴안게 됐다.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도 내 내면임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비로소 내 시 속의 등장인물들을 만나 희로애락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시집을 펴 보면 맨 앞에 ‘시인의 말’이 나오지만 나는 그 글을 가장 나중에 썼다. ‘詩’라고 쓰고 나면 파도 같이 많은 말이 밀려오기도 하고 또 한순간에 그 말들이 다 사라져 벼랑 같은 허공 속이 되기도 한다. 촌철살인의 한마디는 아니어도 좀 더 근사한 말을 적어서 넣고 싶었지만 내게 가장 절실한 말을 썼다. 

시집을 묶으면서, 여기저기 서성거리는 시들과 만나면서, 내 안에 꽉 차있는 무엇들 때문에 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에게서 무엇을 버려야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라고 썼다. 그 말을 쓰는 순간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한 구절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내 스스로 마음을 육체에 사역하도록 했으니)이 내 내면을 다녀갔다. 

택배를 기다리면서 온몸이 화끈화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주변에서는 첫아이를 출산하는 산통이라고 한다.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려니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크다. 먼저 오랜 친구인 남편에게 한 권 선물했다. 나에 이어 두 번째 독자가 된 셈이다. 시집발간에 도움 준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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