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로 새 밥을 짓는다.’ 요즘 국내 정유업계에서 즐겨들을 수 있는 말이다. 정유공장에서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를 ‘새상품’으로 만드는 고도화 설비 증설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새 성장동력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에쓰오일은 최근 울산공장에 완공한 잔사유(殘渣油)고도화 시설(RUC)과 올레핀다운스트림 시설(ODC)의 상업가동을 앞두고 있다. RUC는 원유에서 가스, 경질유 등 상품성이 좋은 제품을 추출한 뒤 남은 벙커C유 같은 값싼 찌꺼기를 휘발유, 프로필렌 등 고부가 석유화학 중간 원료로 만드는 시설로 각광받고 있다. 에쓰오일은 2016년 5월에 착공한 두 시설에 총 4조8,000억원을 투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까지 울산콤플렉스에 1조원을 투자해 하루 4만 배럴 규모의 감압 잔사유 탈환설비(VRDS) 공장을 짓기 위해 지금 막바지 부지 정지작업 중이다. 아스팔트 등의 원료로 쓰이는 값싼 감압 잔사유를 저유황 연료유, 디젤, 나프타 등 고부가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설비다. 

정유기업들이 잇따라 고도화 설비를 늘리는 첫번째 이유는 원가경쟁력 때문이다. 고도화 설비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똑같은 양의 원유를 활용해 비싼 제품을 더 많이 만들어 팔 수 있다. 고도화율이 50%가 넘는 북미 업체들은 비싼 원유 대신 값싼 벙커C유를 구매해 고급 경질유로 바꿔 수익을 극대화한다. 한국 정유업체들의 고도화율은 30~40% 안팎이다.

한국 정유업체 ‘빅4(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중 고도화 설비용량이 가장 높은 곳은 현대오일뱅크다.미국의 대(對)이란 에너지·금융제재로 이란은 핵심 수출품인 석유와 천연가스, 석유화학 제품 국제 거래가 차단됐다. 석유 한방울 안나지만 모처럼 맞은 호황기와 함께 ‘누룽지로 새 밥 짓기’로 우리나라를 막강한 수출국가 반열에올린 정유기업들이 자랑스럽다. 

호황을 누려온 정유·석유화학업계의 내년 이후 전망이 흐려졌다. 성장률 둔화가 예고된 가운데 당장 정제마진 악화와 공급과잉에 따른 ‘다운사이클’ 진입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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