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은 시대의 역사 기록하는 소중한 자산인데
관련 사업비 전액삭감 소식 연일 잇따라 안타까워
후손 위해 사업 취소보단 발전적 방향 선택해주길

 

정은영 울산문인협회장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날 가지산 정상에는 눈이 내릴 것 같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밟으며 가지산 정상을 올랐던 기억도 오래전 일이다. 지금은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서 산행은 물론이거니와 일반적인 취미활동도 쉽지가 않다. 울산예총 사무처장으로, 또 울산문인협회장으로 활동한 2018년은 그야말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내년부터는 올해보다 업무량이 크게 줄어들 것 같다. 지난 4년간 일했던 예총사무처장직을 떠나기 때문이다. 임기가 내년 2월말까지다. 그래서 내년 3월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웠다. 한결 가볍게 울산문인협회 회원들을 위한 다양한 문학 활동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부푼 꿈에 젖어있을 때가 아닌 것이 최근 들어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놀라는 일이 잦다. 전통적으로 개최해왔던 각종 사업예산들이 일부 삭감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비 전액이 삭감되고 있어서다.

문화와 예술은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기존 사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우리시대의 문화는 훗날 후손들에게 역사로 전달된다. 지금 당장 경제가 어렵다고 기존 문화예술사업들에 대한 사업 전면취소를 하기 보다는 발전적 방향을 선택하는, 예술에 대한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사람과 시대에 따라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하기에 앞서서 모든 것은 신중해야 한다. 쉬운 결정이 자칫 역사와 전통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오늘 아침 지역신문에도 어떤 예술사업에 대한 예산이 전면 취소됐다고 하는 기사가 대서특필돼 있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내년 한해 초근목피의 살림살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인들이 실제로는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정이 그렇지 못한 데서 심각성 있다. 사실 우리는 늘 중앙과 지방을 분리해서 말한다. 중앙예술인들은 인기를 얻으면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지방예술인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전시, 공연행사 대부분을 시와 구청, 또는 지역 기업에 의존해야만 겨우 행사를 치를 수 있다.

그래서 예술단체 책임자들에게는 12월 이맘때가 내년의 사업들을 챙겨봐야 하는 성가신 계절이다. 예산 배정권한을 쥐고 있는 기관들을 찾아가거나, 부탁하면서 사업비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오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이들을 보면 같은 길을 걷는 예술인의 한사람으로, 또 예총 10개 지회 살림살이를 지켜보는 사무처장으로서 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술 활동만 해서 생계가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방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넉넉하지 못하다. 

이제 시의회와 구의회 회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낯선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 와서 받지 않았다. 아침부터 어떤 사업이 전면 취소됐다는 언짢은 소리를 들을까봐서다. 요즘의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사무실로 오는 중에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훌쩍 가지산 정상으로 눈 구경이라도 떠날까 해보지만 실상은 그림의 떡이다. 당장 오늘 저녁에 이사회가 있다. 이사회에서 이런저런 발전 방안들이 제시되겠지만 이미 내년도 사업에 대한 지원 여부 결정이 확정된 상황에서 모든 것은 공염불이다.

예술과 문화, 문화와 예술, 중요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말하지만 아직 울산에서만큼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음은 현실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내년 사업을 희망차게 구상해볼 수는 없을까, 그것이 화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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