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연히 들은 문재인․송철호의 대화
한반도 평화와 더불어 탈원전 오래 전 구상
국토․민족 앞날 위해 정책 성공에 힘보태야

김한태

울산학연구센터장

나는 훗날 대통령과 울산시장이 될 두 사람이 나눈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2014년 봄이었다. 당시 문재인 국회의원의 집이 있는 양산과 문 의원의 오랜 벗 송철호 변호사가 사는 울산 가운데 문수산 자락 음식점에서였다.

얘기의 골자는 ‘소도’(蘇塗)였다. 역사 교과서 첫 머리에 나오는 삼한시대에 누구도 범접치 못하는 신성구역에 관한 것이었다. ‘소생하는 터’라고 풀이할 수 있는 소도는 지금으로 치면 작게는 사원이나 수도원이고 크게는 국제적십자사나 영세중립국 같은 것이다.
두 사람이 나눈 얘기는 ‘한반도 소도론’이었다.
엄중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 얘기가 세월이 갈수록 현실적 사안이 돼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탈원전과 남북평화 담론이 그 얘기 안에 있었다.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평화는 세계 최고의 콘텐츠입니다. 대한민국이 이 콘텐츠를 구현해야 합니다.”
“그렇죠. 한반도는 세계의 보석이랄까, 비단에 수놓은 국토 아닙니까. 금수강산에 그런 콘텐츠를 편다면 세계의 수도가 될 수 있습니다.”
“DMZ에 UN 기구를 설립해도 좋겠지요. 세계평화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일 텐데요.”

“1815년 나폴레옹전쟁 사후처리를 위한 유럽평화회의가 열렸어요. 그때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이 됩니다. 주변의 강국 사이에서 스위스가 선택한 것은 누구도 범접치 못할 장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 최강의 에너지가 밀집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백범선생이 말한 문화적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 소망스럽습니다.”
“영토분쟁 종교분쟁 무역전쟁... 끝없는 갈등이 이어집니다. 국토를 온전히 보전하고 평화의 거점이 되는 것이 시대적 소명입니다.”

“마치 소도와 같은 것입니다. 삼한시대에 소도가 있었죠. 치외법권 지대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억압받는 사람이 피신할 수 있는 신성한 곳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다는 아실럼과 같습니다. 성서에도 도피성이란 개념이 소개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의 소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는 세계에 드문 국토입니다. 뚜렷한 사계절, 다채로운 산하가 어울린 이 땅을 신성하게 가꿀 의무가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문제를 차츰 해결해야 합니다.”
“소동파가 읊었다죠. 고려 땅에서 한번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아라비아 상인들은 오래 전부터 신라 땅에 상륙하면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아랍의 여러 지리지에 그렇게 적혀있다고 합니다. 울산서 경주 가는 길에 원성왕릉이 있는데, 거기에 아랍 무인상이 그런 점을 시사합니다.”

이 얘기를 살피면 한 분은 성직자 같고 또 한 분은 역사문화적 취향이 보인다. 이날 대화 요지는 요즘 활발히 논의되는 탈원전이 오래 전 구상된 것임을 시사한다. ‘영구적 오염요인의 점진적 해소’란 말이 그 뜻이다. 원전 사고는 전쟁 못지않은 잠재적 위협이다. 누구 말대로 ‘판도라’ 영화 한 편 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 얘기는 2014년에 들었고 영화는 2016년 상영됐다.
또 이 대화에는 세계에서 빼어난 금수강산을 정성껏 보존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세계의 피난처이자 휴양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수강산이란 표현을 언제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탁월한 식견이다. 누구나 금수강산에 살고 싶고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 만에 하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괴멸적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또 한 줌의 우라늄을 얻기 위해 산더미 같은 암석을 부수고 녹이는 환경비용을 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당 몇몇 의원처럼 ‘재앙적 탈원전 중단’을 맹렬히 선전할 것이 아니다. 또 민주당 한 의원처럼 ‘시행착오’로 몰고 갈 일도 아니다. 국토와 민족의 앞날은 눈앞의 이익에 매몰될 대상이 아니다.

지금 울산은 수소와 해풍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려고 한다.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서다. 국토와 후손을 생각한다면 이런 일이 성공하도록 온 힘을 보태야 마땅하다.
평론가 김윤식은 박경리의 기나긴 소설 ‘토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임금도 변하고 역사도 변하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산하(山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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