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포토라인(photoline)은 수사기관에 공개 소환된 사람이 잠시 멈춰 서도록 바닥에 테이프로 표시해 둔 선(線)을 말한다. 1993년 5공 청문회에 출석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방송취재진 카메라에 이마를 부딪쳐 다친 이후 포토라인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건 ‘폭력’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언론과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법조계의 포토라인 논쟁에 불을 지핀 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그는 1월 11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검찰청 현관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을 한마디도 않고 지나친 이후 ‘패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검찰 조사를 거부한 것도 아니고 포토라인을 지나친 게 비난받을 일인가’라는 반론도 나왔다. 검찰이 지금까지 수사협조 여부에 따라 소환 일정을 멋대로 알리거나 비공개 하는게 문제다. 포토라인에서 ‘마사지’를 받고 들어오면 진술과 태도가 달라진다고 말한 검찰관계자도 있었다.

피의자가 포토라인에서 질문세례를 받는 순간 지켜보는 국민들의 상당수는 그 피의자가 유죄라는 심증을 가지게 된다. 나중에 반론 보도가 이뤄져도 이미 훼손된 피의자의 명예를 완전히 회복하는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포토라인은 법과 증거에 충실해야 할 재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포토라인은 멍석말이와 마찬가지로 비겁하다. 왠지 넘어뜨리기 힘든 상대(피의자)를 미리 대중에게 던져줘서 힘을 잔뜩 빼놓으려는 것 같다”(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판결이) 국민 공분을 거스르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재판이라는 지탄이 돌아온다. 법관들 스스로 이런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상에는 두개의 법정(法廷)이 존재한다. 하나는 현실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여론의 법정’이다. 현실 재판은 판사가 주재하지만 여론 재판은 검찰이 조종한다. 한국에선 멍석말이 ‘포토라인’에 서면 죄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인민재판을 당할 수 있다.

포토라인은 검찰의 소환 일시 ‘사전 공지’와 언론의 ‘설치’로 만들어진 것이니 검찰·언론 등이 나서 개선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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