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이라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새벽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이어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이날 오전 출근길에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앞서 검찰은 "이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7개월 동안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며 양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본 검찰의 결론을 법원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3차례 검찰 소환조사 뿐만 아니라 2차례 더 검찰에 자진 출석해 피의자 신문조서를 꼼꼼하게 열람했다. 

이같이 유례없는 검찰 자진출석은 재판에 앞서 검찰의 전략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 것은 물론, 영장심사에 대비해 도주 우려가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는 △일정한 주거가 없을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범죄의 중대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이 압수수색과 100여명에 달하는 전‧현직 판사들로부터 확보한 진술 등 7개월 동안 수집한 증거 앞에 양 전 대법원장은 무릎을 꿇었다. 

특히 검찰의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으로는 △이규진 수첩 △김앤장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등 3가지가 꼽힌다.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작성한 업무수첩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大(대)'라는 표시와 함께 기재됐다. 또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에도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 표시를 남겼다.

김앤장 독대 문건 역시 양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의 한상호 변호사를 만나 일제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논의한 내용이 담겼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에서 이 같은 표기가 나중에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오히려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면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나 한상호 변호사 등 관련자들과 입맞추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심사 대응전략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를 불러온 셈이 됐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최대 20일 동안 추가 수사를 벌인 뒤 재판에 넘기고,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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