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중심의 ‘수요․공급의 법칙’은 고객 만족도 높아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충족욕구=수요’ 예측에 썼던 ‘도구’
첨단기기 선정부터 국가정책 결정에도 ‘사고의 도구’ 필요

 

장만석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예를 들어 TV든 스마트폰이던 전자제품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비교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 제조회사가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기능도 그렇고, 여간 어렵지 않다. 풍요로움이 주는 스트레스다.

얼마 전에 바꾼 ‘무선’ 청소기도 그렇다. 사실 십수년 사용했던 구형 ‘유선’ 청소기도 쓸 만했다. TV 광고가 충동구매 ‘욕구’를 부추기고, 결국은 ‘지름신(神)’을 강림시켰다. 그러자 ‘무선’에 대한 장점만 보이기 시작하면서 ‘유선’의 단점(무겁고, 선을 끌고 다녀야 되고, 부피도 크고, 높은 곳의 청소나 침대와 같은 특정 부위의 청소도 어렵고, 등등)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은 주머니 사정과는 관계없이 머릿속에서는 ‘무선’ 청소기 구입이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 다음은 자연히 구매단계로 넘어간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차례다. 인터넷 검색으로 가격과 성능을 살피고, 제품의 평가도 부지런히 읽어본다. 남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장문의 평가들인지라 귀가 얇은(?) 나에게는 기웃거릴 시간이 늘어난다. 최종 결정을 남겨 두고서도 ‘주머니 사정’과 ‘성능’ 사이에서 마음의 ‘갈등’이 심해진다. 사실 엉뚱한 지름신에 현혹되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하니 선택의 순간에 ‘갈등’을 줄여주고, 혹시 모를 선택 후의 ‘후회’를 줄여주는 나만의 ‘도구’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충족욕구’를 해소할만한 ‘성능’이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사용하면서 ‘후회’를 주지 않을 ‘만족도’를 유지하는 조건이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수요·공급의 법칙’에서 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수요·공급의 법칙’은 가격이 올라가면 공급량이 늘어나는 대신 소비량은 줄어들게 된다는 법칙이다. 세로축이 가격이고, 가로축이 수량인 그래프에 그려보면 공급은 가격과 수량에 비례는 선(線)이 되고, 수요는 가격과 수량에 반비례하는 선(線)이 된다.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과 수량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다분히 공급물량을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산자’ 중심개념이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소비자’ 입장에서, ‘충족욕구’, ‘제품의 성능’, ‘비용부담’, ‘만족도’ 등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요·공급의 법칙’을 ‘소비자 중심’으로 약간 비틀어 보자. ‘가격’은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수량’은 만족도를 정량화한 ‘서비스 수준’으로 바꾸면 재해석이 가능해 질 것도 같다.

‘비용(세로축)’과 ‘서비스 수준(가로축)’을 축으로 하는 그래프에 그려보면, ‘공급(=제품 성능)’ 은 ‘비용’과 ‘서비스 수준(=만족도)’에 비례하고, ‘수요(=충족욕구)’는 ‘서비스 수준’에 반비례 할 것이다. 두 선의 교차점이 적당한 ‘비용’으로 ‘성능’과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키는 ‘중간 점’이 될 것이다. 이 점을 중심으로 가로축의 ‘서비스 수준’을 다섯 구간(좌에서 우로 F, D, C, B, A)으로 나누면, C는 중간 부, F는 충족욕구가 상대적으로 큰 ‘서비스 부족’ 구간인 반면, A는 성능이 과다한 ‘서비스 과잉’ 구간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고가의 ‘무선’ 청소기의 선택에도 이 ‘도구’를 사용해 선택해 보자. ‘성능’과 ‘비용’을 따로 따로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나열한 후 ‘중(中)’이나 ‘중상(中上)’ 그룹에서 취향에 맞추어 선택하면 대략 서비스 수준이 C나 B일 것이다. 조급했던 ‘지름신(神)’이 떠나고 ‘냉철한 가슴’만 남아도 ‘지불 비용’과 ‘성능’에 후회가 없다.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증거다. 바로 여기가 동양사상의 정수인 ‘중용’의 ‘과유불급’(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에 해당할 것이다.

사실 이 방식은 국가에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충족욕구(=수요)를 예측하고 적정량을 공급하기 위해 썼던 ‘도구’다. 서비스 수준 F로 가면, 공급부족으로 국민의 충족욕구가 커져 불만이 폭발하고 지체비용도 늘어난다. 반면, 교통량 부족으로 서비스 수준 A로 계속 남으면 엄청난 예산낭비다.

이러니 ‘고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대개의 기능을 ‘무용지물’로 버려두는 첨단기기의 선정에서부터 국가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많은 ‘사고의 도구’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면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말하는 개인이나 가정에서 행복이 일어나는 ‘신비한 구간’도 여기서 찾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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