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헤라 시인.  
 

오랜 여행 끝 눈빛은 지는 햇살에 가려 있다 편서풍이 지나가는 어느 접점에서 나를 내려놓는 표정이 그윽하다 어둠이 멎는 자리마다 커다란 애드벌룬을 띄우는 너는, 잠보다 깊은 생각에 떤다

흰 눈썹같이 잎 지는 뜨락을 그린다 저녁의 빛이 네 여린 어깨를 흔들며 가고 있다 회복되지 않은 입술 가장자리에 떠 있는 흐린 지평선 흐르지 않는 강물은 목덜미에서 거센 포말로 나부낀다

홀연히 사라진 거리에 바람 하나 떨어져 흩날리고 빛이 검은 머리카락 위에서 출렁인다 가만히 골목 어귀로 돌아 나간 자리 새하얀 그늘로 남아 고운 눈길 하늘거린다

그대 체취는 해맑은 눈시울이 되어 구름 속에 박혀 있다

아늑한 시베리아 푸른 바람으로 선 하늘 한 자락, 흔적 날아간 우듬지에는 이제 시린 바람 밀어 올리는 안개뿐

사랑의 모형 그리며 날아오른다 햇볕 기울어지는 도시의 지붕 너머 발자국 소리 귓가에 젖고 그대는 지금 아득한 어둠 속에 묻혀 있다 너는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

그림=배호 화백

◆약력 2015년 ≪시와사상≫ 등단. 시집『초경의 바다』, 한국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작노트

나는 시를 대할 때마다 광장을 생각한다. 길이 여러 곳으로 나 있고 방황하는 기로에서 광장이 주는 인식은 언제나 다양하다. 꿈이 있는 방향과 꿈이 없는 관념이 충돌하는 가운데서 시의 지평을 인식한다. 시는 나의 선택이지만 나는 시의 지형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시에 관한 한 나는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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