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엔진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요즘 자동차들은 뒤따라 올때 기척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특히 전기차의 무소음 엔진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그래서 ‘자동차 사운드 다자인’시대가 열렸다.

한의학에서 귀는 음적이고 어두운 기관이다. 생긴 모양도 소라고둥처럼 속으로 수축한다. 외부 넓은 곳에서 추운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같다. 이렇듯 감각을 담당하는 오관 중에서 청력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눈은 밝은 곳에서 정보를 모으지만 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보를 모은다. 공포 영화에서 소리를 빼면 ‘팥소없는 찐빵’이 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조선후기 유학자이자 우국지사인 매천 황 현(1855~1910)은 시문집 ‘매천집’에 정월 대보름의 세시풍속인 ‘이명주(耳明酒)’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명주는 ‘귀가 먹는 것을 막아 준다’는 귀밝이 술로, 정월 대보름 아침에 온 가족이 함께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치롱주(治聾酒), 명이주(明耳酒), 청이주(聽耳酒)로도 불린다.

귀밝이 술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다. 술은 맵고 더워서 어둠을 밝히면서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귀밝이 술을 마시는 것은 정월대보름의 음양오행의 지혜를 들여다보는 의식이다.

나이가 들면 달팽이관이나 청각 담당 뇌 부위에 변화가 오면서 외부소리 듣기 기능이 떨어진다. 이른바 노인성 난청이 온다. 노인성 난청이 있으면 누군가가 말을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말소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넓은 공간에서는 더 심해진다.

또 말을 빨리하는 젊은이들의 얘기를 듣는 게 힘들고, TV시청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주변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웅성거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인지하지 못한다. 노인성 난청을 방치하면 사람들과의 대화를 꺼리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결국 성격까지 변해 고집스럽거나 의심이 많아진다.

눈이 어두우면 사물과 멀어지고, 귀가 어두우면 사람과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기해년(己亥年) 정월 대보름의 ‘귀밝이 술’ 한잔이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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