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세 올라 쫓겨난다” “노조 허용하라”
정치인들이 걷어찬 아마존 뉴욕 본사
2만5,000개의 고급 일자리 날아가

 
정치 입김 SK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광주형 일자리’ ‘대우조선 인수’ 앞둔
현대차·현중노조 현명한 판단 내려야

 
세계최고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 뉴욕에 아마존 제2 본부를 설립하지 않기로 밝힌 지난 14일(현지시간) 아마존 뉴욕사무소 로비. 연합뉴스

김병길 주필
미국 북서부 끝자락 한적한 도시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일약 세계적 도시로 만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 이 아마존은 2017년 9월 제2 본사를 짓기로 하고 13개월에 걸쳐 입지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시애틀 제2본사 유치전에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의 238개 도시가 뛰어 들었다. 그중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는 85억 달러(약 9조5,200억원)의 통큰 지원금을 제안하며 인센티브 경쟁에 불을 붙였다.

아마존은 마치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듯 희망 도시들을 하나씩 탈락시키면서 20개 후보지를 점찍었다. 2018년 11월 최종 낙점을 받은 곳은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 시티와 버지니아 주 그리스털시티 두 곳이었다. 경쟁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약소한 25억 달러와 30억 달러의 인센티브를 각각 제시했지만 아마존은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최고의 인재 확보 가능성”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두 곳에서 2만5,000명씩의 신규 인력 고용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아마존은 2월14일 뉴욕 제2본사 설립계획을 철회했다. 민주당 소속 일부 좌파 성향 정치인들이 “뉴욕시가 대기업 아마존에 지나친 특혜를 줬다”“집세가 오른다”“노조부터 허용하라”며 집요한 반대운동을 펼치자 아마존은 두 손을 들었다.

뉴욕 주민 중 70%가 찬성하고 최대 2만5,000명의 고급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를 소수의 정치인들이 막은 것으로, 미국에서도 정치 논리에 의해 지역 발전 기회가 무산된 사례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본사 선정지였던 버지니아 주에서는 ‘인센티브 법안’이 통과돼 아마존 진출에 걸림돌이 사라졌다. 하지만 아마존은 뉴욕을 대체하는 제2본사를 유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은 아마존의 철회 결정을 크게 아쉬워했다. 금융, 미디어,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이 실리콘밸리에 견줄만한 ‘태그도시’로 변신하고 성장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대다수 뉴욕 시민들도 분노했다. 멍청하고 명예만 좇는 정치인들이 수많은 일자리를 죽였다고 비판했다. 아마존과 뉴욕시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뉴욕시는 ‘반 기업 도시’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뉴욕시는 작년부터 차량 공유 ‘우버’를 제한하고, 숙박공유 ‘에어비앤비’를 단속하는 등 공유서비스도 막는 도시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한편 구글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사업 확대를 위해 2019년 130억 달러(약 14조 6천억 원)를 투자하고 고용도 최소 1만명 이상 늘리기로 했다. 미국 경기가 하향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기업들이 일제히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가운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구글의 역발상이 주목된다.

구글은 미국 50개주 중 절반에 가까운 24개 주에 데이터 센터나 지사를 두게 된다. 구글이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선제적 투자에 나선 것은 미래 비즈니스 인공지능 클라우드 사업으로 승부가 난다는 판단 때문이다.

10년간 120조원이 투입되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특화 클러스트(산업집적지)가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 140만m²(약 124만평)부지에 들어서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수도권 규제 완화다.

유치에 나선 도시는 경기 용인시와 이천시, 충남 천안시, 충북 청주시, 경북 구미시 등이다. 이들 지자체는 반드시 우리 지역으로 와야 한다고 강변했다. 무엇보다 일자리 1만개가 달린 기업 유치전에서 균형발전이라는 국민의 명령에 응답해야 한다는 식이었을 뿐 파격적인 지원금 등 인센티브 경쟁은 없었다. 해당 지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데 적합하다는 설득도 없었다. 오히려 지역 표심을 자극해 중앙 정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세계 1위 반도체 산업을 대하는 지자체의 실상이다.

미국 UC버클리 대학에서 노동 경제학을 가르치는 엔리코 모레티 교수는 ‘직업의 지리학’이라는 책에서 한 도시에서 첨단기술 일자리 한 개가 새로 생길 때마다 그 도시에서 궁극적으로 추가 일자리 5개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통계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선 ‘자영업자 공급과잉’이라는 근본 원인을 놔 둔 채 지원과 보호정책 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중장년층이 자영업에 과도하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근본대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경직돼 있는 노동시장을 유연화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때 ‘병든 나라’로 까지 불렸던 일본과 독일이 경제 활력을 되찾은 것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혁파 등 과감한 정책전환 때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초일류 기업을 갖지 못한 우리들의 딱한 사정을 돌아보면서 침체된 울산 경제는 물론 사상 최대의 일자리 흉년에 시달리고 있는 이 나라가 가고 있는 방향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다.

‘광주형 일자리’와 대우조선 인수를 놓고 설왕설래 중인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역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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