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규모 '가상 전파망원경' 활용…"블랙홀 관측 연구 가능"

천문우주 연구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실제 모습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블랙홀의 '그림자'를 과학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어 상상의 원천이 돼온 블랙홀을 과학자들이 실제 관측 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은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 블랙홀은 밝은 빛 가운데 검은 부분이 존재하는 형태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경이로운 모습은 어디까지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상상도'다. 18세기 블랙홀의 개념이 처음 나온 뒤 지금껏 블랙홀을 관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주의 검은 구멍'으로도 불리는 블랙홀은 중력이 매우 강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것, 즉 블랙홀 자체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블랙홀 주변에는 블랙홀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넓은 경계지대인 '사건의 지평선'(horizon of event)이 있다. 세계 과학자들은 2017년 이 영역을 관측하겠다는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

어떤 물질이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때 일부는 격렬하게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를 관측하면 사건의 지평선 가장자리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이를 관측하려면 지상의 대형 광학망원경이나 허블우주망원경(HST), 대형 전파망원경을 뛰어넘는 아주 높은 해상도를 가진 관측 장비가 필요하다.

EHT 연구진은 전 세계에 있는 고성능 전파망원경 8개를 연결해 사실상 지구 전체 규모의 거대한 가상 전파망원경으로 활용,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관측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EHT를 구성하는 각각의 전파망원경이 동시에 같은 블랙홀을 관측해 보내온 자료를 분석하고 여러 번의 보정, 영상화 작업 등을 통해 EHT 연구진은 지구에서 5천5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 M87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에 의해 왜곡된 빛이 블랙홀 윤곽을 드러나게 하는데, 이 윤곽 안쪽의 어두운 부분을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한다. 블랙홀의 그림자를 알게 되면 사건의 지평선 크기를 가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블랙홀 크기와 질량을 계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블랙홀이 있는 은하 중심부의 질량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번 연구의 의의는 '블랙홀의 윤곽'을 인류 역사상 처음 관측했다는 데 있다. 변도영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지금껏 블랙홀을 이론적으로 예상했고 존재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얘기해 왔지만, 블랙홀의 존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기관의 손봉원 박사는 "이 연구 결과는 블랙홀을 실제 관측해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관측 성공은 무엇보다 고해상도의 장비가 있어 가능했다. 블랙홀은 매우 밀집된 천체이므로, 거대질량 블랙홀이라도 지구에서는 볼 때는 하나의 점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크기다. 지구 질량의 블랙홀은 크기가 탁구공의 절반보다 작다.

임명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지구 규모의 전파망원경, 최고의 '돋보기안경'이 있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짧은 파장을 이용할수록 해상도를 높일 수 있는데, 이것도 관측 성공의 요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EHT 프로젝트 총괄 단장인 미국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셰퍼드 도엘레만 박사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일을 이뤄냈다"며 "지난 수십 년간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최고 성능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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