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타고 가다 문득 생각 난 `봄은 무엇일까' 
직원들에게 돌린 `롤링페이퍼'에 핀 다양한 봄
동료들과  ‘봄 이야기' 로 즐거운 한때 여유가져

 

이동우 한국언론진흥재단·작가

전철을 타고 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봄은 무엇일까? 봄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까? 사람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저마다의 봄이 궁금해 졌다. 따스하게 내리쬐던 봄 햇살 때문일 수도 있고, 덜컹거리는 전철에서 바라보던 노란 개나리 때문일 수도 있고 남대문 시장 꽃 상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꽃들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남녘의 봄소식을 TV로 전해 듣던 날, 직원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남대문 시장에 갔다. 남녘 못지않게 서울의 봄도 따듯하던 날이었다. 손 때 묻은 탁자가 놓여있는 오래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시장구경에 나섰다. 점심을 먹고 난 후였지만 먹음직스러운 부산어묵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어묵도 먹고, 가게에 걸린 봄옷을 구경하고 그릇을 보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누군가의 입에서 꽃 상가에 가보자는 말이 나왔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과 꽃상가. 봄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말 속에서 생기 있는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꽃 상가 입구에 들어서자 온갖 꽃의 향기가 가득 밀려왔다. 꽃의 향연. 수 백, 수 천 가지의 꽃들. 프리지아, 튤립, 카네이션. 빨갛고 노란 형형색색의 꽃들이 상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기 저기 온갖 꽃들, 사방이 온통 꽃 천지였다. 봄의 향기가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꽃을 한 아름 샀다. 꽃병도 몇 개 샀다. 회의탁자를 비롯해 사무실 이곳저곳에 꽃을 꼽아 두었다. 꽃은 사무실에서 새롭게 피어났다. 봄이 사무실에 찾아 왔다. 꽃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봄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건, 봄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궁금해졌던 건 아마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롤링페이퍼를 돌리기로 했다. ‘당신에게 봄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마음을 적고 동료 직원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세요.’ 종이위에 이렇게 적고 동료 직원의 책상위에 몰래 올려 두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사무실에 직원들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롤링페이퍼를 받아 본 직원들이 종이에 적힌 글귀를 보며 봄을 느끼고, 어떤 말을 써야할지 고민하며 마음속의 봄을 꺼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동료 직원의 책상위에 종이를 살짝 올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가 조금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왔다. 이제 막 출근하는 것처럼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롤링페이퍼가 누구에게 전달될지 직원들이 어떤 말을 적을지 궁금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오전 내내 롤링페이퍼는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 롤링페이퍼가 책상위에 놓여 있다. 짐짓 모른 체 하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침부터 사무실에 돌고 있는 것 이라고 했다. 동료들이 쓴 글귀를 읽어 보았다. 시의 형식을 빌려 봄을 이야기 한 것도 있고, 노랫말로 봄을 이야기한 것도 있다. 봄과 관련된 시를 적은 것도 있고, 몇 개의 단어로 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뛰어난 문학성을 보이는 글귀도 눈에 보였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동료들의 빼어난 문장실력을 엿 볼 수 있었다. 얼른 봄에 대한 글귀를 하나 적고 다른 동료에게 롤링페이퍼를 넘겼다. 

퇴근 시간이 다 되자 롤링페이퍼가 다시 돌아왔다. 앞장은 이미 채워져 있고, 뒷장에도 꽤 많은 글귀가 적혀 있다. 아까 썼는데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하자 다른 동료 직원이 자기에게도 몇 번이나 왔었다고 맞장구를 한다. 또 다른 직원에게 종이를 건네며 봄에 대해 적어 달라고 했다. 자신은 이미 적었다고는 대답이 돌아왔다. 봄에 대한 생각을 적지 않은 직원들을 찾아 다녔다.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혹은 책상위로 조용히 전해지던 롤링페이퍼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봄에 대한 생각을 적지 않은 직원들을 서로가 찾아다녔다. 종이위에 쓰여 진 동료 직원들의 봄에 대한 생각을 여러 사람이 돌려 읽으며 봄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이 무슨 글귀를 적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고 일부는 출처가 밝혀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적은 글귀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봄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마음들을 읽을 수 있었다. 봄을 이처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다음 날 아침, 종이위에 적힌 문구 중 두 개를 뽑아 글을 쓴 당사자에게 봄 콘테스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됐으니 책을 선물로 주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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