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 때는 봄바람이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4월의 끝자락이다. 산철쭉이 제 빛깔로 산을 물들이는 계절이다. 그날 저녁도 늘 그렇듯 홍은 몇몇의 후배들과 주막에 자리하고 있다. 막걸리 잔이 비워지고 채워지고 그런 후 홍은 태은에게 묻는다. “너 함흥냉면알지. 평양냉면 알지. 근데 조선냉면은 없지?” 태은은 못들은 체 하면서 혼잣말로 “오늘은 웬 냉면이야기? 드디어 밑천이 다 떨어졌구나.” 순간 옆자리에 있던 초아가 진지하게 반문한다. “냉면집 협찬 받아요?” 홍은 초아를 말없이 바라보다 술잔을 기울인다.
# 울산문화예술회관 연습실에서 소품을 정리한 영욱이 뒤늦게 자리에 합류한다. “아니 분위기가 왜이리. 칙칙해. 이 좋은 봄날에, 묵자 묵고 죽은 구신 때깔도 좋다카던데” 그런 영욱에게 홍은 진지하게 말한다. “영욱아 넌 기억나지. 가장 울산적인게 가장 한국적이라는 말. 문화콘텐츠는 그 지역의 독자성 고유성을 기본으로 시작한다는 것” 영욱은 씩씩하게 대답한다. “예” 태은은 술잔을 높이 들며 “오늘도 신자 한명 생기겠네. 한 달만 지나봐라. 현실은 흙수저” 라고 외친다.
 
# 홍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묻는다. “전주비빔밥, 언양불고기, 강동미역 이게 뭐냐면?” 그러자 태은은 비꼬듯이 말을 한다. “난 다 외워요. 외워. 지역성, 고유한 문화, 독자성”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홍은 “그래 문화는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거지. 우리들도 이 절대적 명제를 늘 가슴에 품고 가야돼. 공연이든 축제든 문화콘텐츠제작이 가야할 방향이지” 그러자 한 모금의 술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긴 시간을 자리했던 보라가 넋두리하듯 말을 던진다. “문화콘텐츠제작 당연하지. 그럼 뭐해? 누가 해? 할 사람들이 없는데?” 그러자 모두 산철쭉이 푸른 달빛에 젖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준겸은 ”저 이제 가야돼요, 다른 공연 때문에, 미안해요“ 태은은 준겸에게 팔을 휘저으며 말한다. ”미안할 것 없어. 다들 가야돼“ 그리고는 강원도로 서울로, 전주로 모두들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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