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매일-반구대포럼 공동 기획 - 대한민국 인류유산 '대곡천암각화군'

9. 반구대 암각화 조성시기 논쟁 `신석기 VS 청동기시대'

 

강봉원 교수

암각화 발견 반세기… 물상 해독,
제작도구 견해 조차 일치 안돼

고래 그림 속 ‘쇠뇌’ 추정  근거로
‘청동기-초기철기시대' 편년에

석기로도 암각화 그릴 수 있고
‘쇠뇌’가 석기일 수 있단 주장도

발견 초기 추정학설  답습은 곤란
증거 수집‧분석 통해 결론 내야

반구대암각화의 조성 시기를 밝히는 것은 세계유산 지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에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사진은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그림들.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그동안 여러 기관과 연구자들의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가 집적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그중에서도 논쟁의 핵심이 되는 것은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시기 문제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 시기를 밝히는 것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1971년에 발견 된지 거의 반세기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암각화에 보이는 몇 가지 물상의 해독과 암각화 제작에 사용된 도구의 재질에 대해 견해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암각화 전공자는 물론이고 적지 않은 고고학 연구자들도 반구대 암각화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근래 일부 연구자들은 반구대 암각화가 ‘신석기시대’에 조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다양한 고고학 자료 수집 분석 필요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신석기시대’로 편년한다고 해서 더 많은 점수를 얻게 되고 반대로 ‘청동기시대’로 편년한다고 해서 더 적은 점수를 얻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를 차치하고 반구대 암각화의 편년 연구는 한국 고고학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반구대 암각화를 적절하게 편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고학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우리나라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에 대한 전반적인 고고학적 맥락과 세계 다른 지역 암각화와의 비교문화사 및 민족지학적인 자료도 동시에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시기에 대해 이렇게 양극화 된 경위를 간단하게 검토하여 볼 필요가 있다.
 

고래 그림에 등장하는 철촉과 쇠뇌 추정 도구.강봉원 교수 제공

#발견 당시엔 신석기시대로 편년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를 최초로 발견하고 1984년 보고서를 출간한 황수영과 문명대 선생께서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시기를 ‘신석기시대’로 편년 하였다. 당시 이러한 편년을 도출한 것은 제작기법으로 전면 쪼기[全面彫啄]와 선 쪼기[線彫啄]의 중복관계에 주목하여 일부 전면 쪼기로 제작된 고래 물상이 하층에, 일부 선 쪼기로 제작된 호랑이물상이 상층에 놓여있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고래물상을 비롯한 해양동물이 이른 시기, 호랑이를 비롯한 육지동물은 늦은 시기로 상대연대를 각각 결정하였다. 나아가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나는 물상들의 모티프(motifs)들이 북 유럽 사냥꾼들의 미술로써 신석기시대 그림 중에서도 고식(古式)에 해당되는 암각화와 유사하고 제작기법도 동일하다는 점을 거론하였다.

아울러 시베리아의 아무르(Amur) 강(江) 지역에서 발견되는 암각화와도 유사한 점이 많은 바 이들이 신석기시대로 편년된다는 점을 거론하며 반구대 암각화를 ‘신석기시대 말기 내지 그 이전’이라는 연대를 도출하였던 것이다.

#고래사냥 `쇠뇌'사용 추정 따라 청동기시대 주장도

다른 한편, 반구대 암각화의 과도기 양식은 신석기시대 말기 내지 청동기시대초기, 보다 늦은 그림은 청동기시대 이후로도 연대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보고와 더불어 이 편년 안이 나오기 전에 김원룡 선생께서 1980년 『한국고고학보』9호에 반구대 암각화 편년에 대한 논문을 게재하였다. 이 논고에서는 반구대 암각화를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기원 전 300-기원 후 100년)'이라는 편년 안을 제시하였다. 반구대 암각화를 제작하는데 석기가 아니라 ‘금속도구'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관찰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울러 고래 등에 박혀있는 물상을 `철촉’으로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것을 철촉을 발사할 때 사용하였을 `쇠뇌[弩]’로 각각 추정하였다(그림 1). 쇠뇌의 경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사용되던 것이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하면서 한반도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것이 고래사냥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해석 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시기를 늦게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견해는 고고학적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그 결과에 의해 제시된 것이 아니고 추정과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울산 황성동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골촉 박힌 고래뼈’. 울산매일 포토뱅크

 
#암석으로도 암각화 제작 가능해

이러한 추정과 해석에 대해서 그간 다른 연구자들이 제기한 반론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암각화 제작은 석기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고고학 및 광물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청동기나 철기문화를 가지지 못한 미국 인디안들의 경우 암석으로 기원전 11,000-10,000년 전부터 암각화를 제작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고래에 박힌 물상은 철촉일 가능성도 있지만 흑요석(黑曜石) 제의 화살촉 혹은 골제 작살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유물들은 울산 황성동에서 일부 발견된 바 있다(아래사진). 철촉을 발사하였을 쇠뇌를 언급하였지만 이 유물은 울산 전역에서 아직까지 단 한 점도 보고되지 않았다. 평양의 낙랑고분인 석암리와 정백리 등에서는 쇠뇌가 여러 점 출토되었지만 한반도 남부지방에서는 현재까지 영천 용전리에서 금동제 쇠뇌 한 점 만 보고되었다. 그리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이 물상을 쇠뇌가 아니라 고래잡이에 사용되었던 부구(浮具)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또 선생께서는 신석기시대에는 먼 바다로 항해할 수 있는 외양선(外洋船)을 제작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근래 창녕 비봉리와 울진 죽변리에서 신석기시대로 편년되는 배가 발견되었다.

그간 울산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3000동 이상이 발굴조사 되었다. 이렇게 조사된 주거지에서 고래사냥 관련 혹은 좌초된 고래를 습득하여 식량자원으로 사용되었을 것을 뒷받침하는 유물은 아직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국내․외 연구자들 중에는 한반도의 주민들이 고래사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고래의 규모가 너무 커서 위험하다거나 반구대 암각화에 보이는 그림 중에서 역동적인 고래사냥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리하여 이 지역 주민들은 고래사냥을 하지 않았고 좌초된 고래를 습득하였을 것으로 해석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구대 암각화를 청동기시대로 편년하기 위해서는 울산지역의 당시 주거지에서 고래관련 인공유물은 물론이고 자연유물(예를 들면, 고래 뼈)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예가 없다. 반면 고래와 관련된 각종 유물은 울산 황성동과 부산 동삼동 그리고 남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신석기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고고학 자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시기에 대한 논쟁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증거 수집 분석 통해 제작시기 결정해야

중요한 것은 40년 전에 고고학적인 증거가 불충분하게 제시된 상태에서 도출된 “반구대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에 조성되었다”는 학설이 우리나라 각 급 학교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점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연대가 ‘신석기시대’ 혹은 ‘청동기시대’ 중에 무엇이 사실에 가까울 것인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물질적인 증거를 수집-분석하는 절차를 거치고 나서 결론을 도출하여야 한다는 논리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서 과거의 학설을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는 반구대 암각화의 조성시기에 대한 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기를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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