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경희 시인.  
 

백련사 동백숲     -윤경희

차마, 뒤돌아서서 올 수가 없었네

새들을 불러 모은
낭자한 핏빛 유혹

속세도
다 잊어버리고
숨은 듯 피고 있어

으늑한 남쪽 끝, 나비처럼 살다 간

무심의 그대 숨결
내 안에 젖어드네

한 백년
감금되어도 좋을
그 적요의 붉은 숲

그림=배호 화백

◆詩이야기

하늘도 모두 가린 무상무념의 숲이었다. 수백 년 넘은 울울창창한 동백나무들, 그 속에 둘러싸인 봄날은 가슴 한켠을 쥐어짜는 듯했다. 백련사 낡은 풍경소리가 꽃잎 위로 처연히 내려앉았다. 마치 불가와 속세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안개 속에 채 피지도 못한 꽃들이 무더기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숙연함에 감히 발길조차 뗄 수가 없었으니. 숲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엄숙했다. 오랜 시간을 머물다 간 다산의 올곧은 마음처럼. 만개하지 않아도 그저 고개 숙이며 낙화의 흔적조차 깨끗한 가진 욕심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적요의 붉은 숲에 오롯이 갇히고 싶었다.

◆약력 2006<유심신인문학상>으로 시조등단. 시집으로는『비의 시간』, 『붉은 편지』, 『태양의 혀』, 100인 선집『도시 민들레』가 있음. 대구예술상,이영도시조문학상(신인상)등. 영언시조동인, 유심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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