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상철 시인 '석굴암'육필원고.  
 

석굴암



세월은 두 손 털고 저만큼 나앉은 자리

달 놓아 숨 고르는 굽이굽이 동해길 열면

밤마다 손끝 얹어 우는 저 천 년 전 피리소리



차마 잠들 수 없는 범종의 둥그런 넋이

감았다 던져 잡은 화두 하나 물고 운다

피안의 대불을 깨워 해탈하는 달빛이여



목어가 물길 잡아 대종천을 돌아온다

은모래 뼈를 갈아 흩뿌리는 미소 속으로

그날 밤 서라벌 향한 용의 꿈을 보았다



●달뜨는 저녁 밤에 울산 정자에서부터 경북 감포까지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번들거리는 동해 바다 표면은 마치 물마루임을 알게 되니라. 그때 가만히 귀 기울여 보라. 문무대왕이 호국의 용이 된 이후 어디론가 숨어버린 만파식적의 피리 소리가 새어 나올 것이다. 더불어 실낱같이 풀리는 해무를 수평 위에 되깔며 집채만 한 절색 미인의 신라 달이 걸어 나옴을 볼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옷자락을 걷어 올리는 저 신라 달의 흰 알몸. 숨이 떡 멎는 그 순간 나는 이미 미쳐있는 것이다. 해탈의 찰나인 것이다.



●시조시인 손상철(孫相喆·1967년~ ). 충북 단양 출생. 1996년 시조문학 신인상(석굴암) 당선으로 문단 데뷔. 시조집 『내 봄날의 반가사유상』(2009) 출간. 제21회 샘터시조상, 2003년 「시조월드」 문학상, 제1회 해양문학상 시 당선 외. 울산문인협회, 시조동인 〈운문시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으로 활동. 현재 현대자동차(주)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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