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활동·투자 날로 악화 불확실성↑
자영업자 매출부진 한계상황 내몰려
손자병법 문구처럼 기발한 기(奇) 필요

임용락 남구고래문화재단 이사

부끄러운 얘기지만 책읽기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읽은 책들 가운데는 나이 들수록 더욱 가까이 두고 싶은 책이 있다. 특별한 추억이 담겼다든지 읽는 재미가 남달라서가 아니다. 대체로 공간적 시간적 경계를 넘어 새로운 화두와 깨달음을 던지는 경우다. 중국 춘추 시대의 손무가 쓴 ‘손자병법’도 그 중 하나다.

다시 읽을 때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어려운 고비에 부딪힐 때면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니 인생지침서도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다. 필자에겐 말 그대로 마음으로 교감하는 오랜 친구이자 스승인 셈이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는 기하급수적 속도를 자랑한다. 반면 그에 따른 불안감도 해를 거듭할수록 증폭되고 있다. 기업 활동과 투자가 날로 악화되면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탓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광주형 일자리 모델과 최근의 현대중공업 본사 이전 논란만 해도 그렇다. 시민들의 염려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기업과 시민의 ‘엑소더스’(탈출) 가속화로 울산의 성장 기반이 조만간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힐 만도 하다.
그 와중에 지역 자영업자의 실상은 ‘산 넘어 산’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얼마 전 발표한 ‘소상공인 경영실태 및 정책과제 조사’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암울했다. 3명 중 1명이 최근 1년 새 휴·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었고, 폐업 또는 은퇴 이후를 대비한 사업 재기나 노후생활 준비가 돼 있는 업체는 18.0%에 불과했다. 울산 남구의 한 중심 상가만 가보더라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이거나 한집 건너 한집 꼴로 ‘임대 문의’ 종이가 붙어 있을 정도니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부진이 가장 먼저 꼽힐 것이다. 여기에다 원가상승, 경쟁심화, 인건비 증가 등이 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현재 경영상황과 관련해 80.0%가 ‘작년과 비교해 올해의 경영수지가 악화됐다’고 응답한데다 매출이 줄었다는 업체도 77.4%에 달했으니 달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이 지경이면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이런 상황이 앞으로 나아질 것이란 희망조차 품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가 버젓이 버티고 있고 급속한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전 방위로 옥죄고 있으니 갑갑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질 만도 할 것이다. 사업을 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생계유지나 더 큰 손해를 감내하기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빈말이 아닌 듯하다. 소상공인은 대부분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이다. 이들이 가족들에게 마저 환영받지 못하고 눈치나 봐야하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가족들 기념일이나 직원들의 길흉사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내뱉는 푸념이 그저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필자의 오랜 기억속의 이 맘 때는 자연의 풍성함을 즐기던 시기였다. 산과 들에는 갖가지 귀한 먹잇감들이 널려 있었고 봄비로 가득 채워진 논에는 모내기 준비로 한창 바쁜 때였다. 푸른 하늘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이라는 어느 문학도 얘기처럼, 그야말로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미래를 기약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가족을 걱정하고 후대의 먹거리를 신경 써야하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 때가 좋았지’라며 한가하게 향수에 젖어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떠오르는 게 손자병법의 문구다. ‘정직하게 싸우는 것은 정(正)이고 기발한 방법으로 이기는 것은 기(奇)다’고 했다. 원칙만으로 경쟁하기엔 세상이 너무나 복잡해졌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를 생각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관광이든, IT기술이든, 수소경제든, 남들 보다 먼저 비전을 찾아내야 한다.
울산의 미래, 남구의 희망을 담은 청사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구체적인 추진방향과 실천계획을 세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 6월의 신록을 보면서 더 이상 후손들에게 짐을 안겨 줘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뒤죽박죽 꼬인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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