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주는 환희 넘어 새로운 희망 펼치는 ‘유월’
셀레임의 계절임과 동시에 호국의 달이기도 해
망종 들어 농사 바쁜시기 햇보리 그스름의 휴식
한가롭고 날 좋은 계절 잠시나마 여유 가져보자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봄이 주는 희망과 환희로 벅차서 분주하다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 다시 마음먹었던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충동에 새롭게 다짐을 펼쳐 놓는 계절이 ‘유월’이다. 금년 유월도 중순으로 들면서 여름이 성큼 다가섰다. 벌써 한낮 기온은 30도를 웃돌아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오뉴월 더위에는 염소 뿔도 물러 빠진다’는 계절로 접어들었다. ‘오뉴월’은 오월과 유월을 함께 뜻하며, 여름 한철을 일컫는 말이다.

시인 김춘수는 ‘유월에’서 ‘이유없이 막아서는/어둠보다 딱한 것은 없다’고 유월의 벽을 넘고 있었고, 수녀 시인 이해인은 ‘눈부신 초록의 노래처럼 향기처럼 / 나도 새로이 태어나네 / 유월의 숲에 서면 / 더 멀리 나를 보내기 위해 / 더 가까이 나를 부르는 당신.’ 이라고 해 눈부신 ‘유월의 숲’을 갈망한다. 모두 새롭게 펼쳐지는 희망의 유월을 읊는다.

유월은 두 개의 얼굴이 공존하는 달이기도 하다. 유월의 꽃들 중에는 언제 봐도 정열적인 스칼렛 장미 덩굴이 여기저기 흐드러져 길가는 걸음을 멈추게 해 ‘붉은 정열’에 대한 깊은 정서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유월은 전장의 화마에 젊은 애국자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산화한 비극적인 사연들을 기리는 달이기도 하다.

가슴깊이 스며들어 멀리까지 미친다는 그리움을 ‘사무치다’라고 하는데, 이만큼 애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유월의 또 한 얼굴은 희생과 헌신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에 대한 뼈저린 그리움으로 그 넋을 기리기 위해 ‘현충일’을 정하고 추념식을 가진다. 바로 엊그저께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장 사위는 가곡 ‘이별의 노래’ 선율이 슬픔과 회한을 더 해주는 듯 애잔하게 연주 됐다. 이윽고 호국의 달을 상징하는 추모곡 ‘비목’으로 추념식은 마무리 됐다. 추념식을 가지는 현충일이 6월 6일로 지정된 유래는 6월에 6·25 전쟁이 발발한 달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 시기가 ‘망종’이라 해 24절기 중 하나로써 풍요를 약속하는 ‘가장 좋은 날’이라는 의미가 있다. 고려 현종 5년(1014) 6월에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렇게 망종 즈음에 전몰자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던 유래를 고려했을 것이다.

또 이즈음에 산야는 ‘조팝꽃’으로 상복을 입은 듯하다. ‘순백의 넋으로 산화해/하얗게 산천을 덮어버린/젊은 생명이여, 생명이여/내가 그대 몫까지 업고/통곡의 전장을 헤매다가/겉보리 익는 유월 언덕에/조팝꽃으로 흐드러져/그대 혼백을 위로하리라.’

유월은 망종이 들어있어 농사일이 바쁜 시기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망종을 넘기면 보리가 장맛비와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있으니 유비무환 뜻도 담고 있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다.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 해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터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치는 이 때에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 년 중 제일 바쁜 시기다. 망종 무렵에 농사 짖는 일꾼들이 ‘보리그스름’이라 해 햇보리를 그스름을 해서 먹으면 이듬에 풍년도 들고 보릿고개 넘는 허기 해결 할 수 있어 그 틈에 잠시 누워 쉬어 갈 수도 있었다.

유월의 6이라는 숫자는 12달의 절반이 똑 떨어지는 숫자다. 어떤 심리학자는 라운드 넘버 이펙트(round num-ber effect)라 해 수가 똑 떨어질 때 새롭게 행동을 하려는 현상과 충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유월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을 슬픔으로 간직하고 이성으로 통제 할 수 없는 울음을 쏟아내고서야 ‘실컷 울고 난 뒤에 오는 카다르시스’로 슬픔의 벽을 허물고 원래 가지고 있던 ‘희망’을 새롭게 사포질을 해야 하는 달이다.

그래서 유월은 시작의 달이다. 전국 해수욕장이 여름을 위해 개장을 서두르는가 하면, 산과 들은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아 날벌레 걱정없어 젊은이들이 백팩킹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깨끗하고 맑은 날이 많아 혼사도 많다. 또 시인 묵객들이 이름난 곳이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나서기에도 좋다. 어쨌든 유월은 햇보리로 허기를 채울 수 있어 좋고, 품앗이 모내기로 풍년을 바라며 이웃끼리 막걸리추렴 하는 정겨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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