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수 시인 육필원고  
 

등잔불



뉘 모를 시름을 솎아

황국(黃菊)조차 여윈 밤을



손 짚고 떨리는 숨길

홀로 지킨 묵약(默約)이듯



묵창(墨窓) 안

휘장을 걷고

그 만적(滿寂)을 흩는가.



스란치마 고이 접힌

밀방(密房)의 꿈나비로



애한(愛恨)을 다못사뤄

속 살 저민 상혼(喪魂)을



빛무리

꽂힌 기슭에

밝혀 쓰는 꽃日記.



찬하늘 뜯어내는

상화(霜花)숲 별빛에 묻혀



선업(先業)의 그림자로

새날의 門을 열고



어려온

슬기가 고여

하얀 손길 그믄다.



●전통 한복 차림을 한 조선 여인의 매력처럼 다소곳한 등잔불. 심지 끝에 앉아 나불나불 춤추는 하얀 나비를 가만 보고 있노라면 무아경에 빠져들게 된다. 훅 불면 꺼질 것 같은 저 쪼그만 한 불꽃으로 인해 세상은 밝아졌고, 지구별 혹은 우주의 실체까지도 가늠하게 되었다. 오늘 밤 골동품으로 수집해 둔 앙증맞은 백자 등잔을 꺼내 조심스레 불 한번 당겨봐야겠다.



●시조시인 김광수(金光洙·1938년~ ). 아호 일상(一常). 일명 영휘(永輝). 경남 하동 출생. 독학(獨學)으로 삶과 문업(文業)을 이룸. 197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등잔불』 당선. 서울 노량진전화국 노조위원장으로 정년퇴임. 시조집 《6인사화집》, 《新抒情》, 《등잔불의 肖像》, 《길을 가다가》, 《곡 없는 반가》. 평설집 《운율의 매력을 찾아》, 《서정의 울림》.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수상. 씨얼문학회장, 한국문인협회 상벌제도위원, 관악문인협회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하동문학작가회 부회장, 계간 「시조문학」 편집주간, 한국시조시인협회 총무이사, 한국문인협회 감사·이사 역임. 현재 국제PEN클럽 회원, 한국문인협회 문인저작권옹호위원 등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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