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첫 아동극 ‘부대장’ 선보인 예인 천재동
그의 고향이자 지역 문예 부흥지였던 방어진
후학 가르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조성을

 

이기우
문화예술관광진흥연구소 대표

인간문화재 증곡 천재동(1915~2007)과 그의 장인 독립운동가 서진문(1900~1928) 의사의 기념관을 복합공간으로 조성시 문화예술적 가치와 독립운동의 교육적 가치면에서 시너지 효과가 증대할 것으로 본다. 복합공간을 제안하면, 천재동 교사가 방어진초등학교와 겸직해 방어진수산중학교의 연극반을 지도했었고, 그의 유해가 뿌려져 안식처가 된 곳으로 대왕암공원에 위치한 교육연수원 부지이거나 대왕암공원 공설 주차장 상층부를 증설하는 방안이 있다.

예인 천재동은 방어진초 첫 교사로, 1931년 울산최초로 아동극 <부대장>을 무대에 올렸다. 1965년 한국최초로 가면전시회에 이어 1968년 한국최초로 창작토우 전시를 열었다.
천재동은 서정자와 1944년 결혼했는데, 그의 장인은 독립투사 서진문이다. 서정자 여사는 96세의 나이로 생존해 있다.

증곡은 1953년 부산으로의 전출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고향초대전을 가졌다. 1997년 울산광역시 승격기념 <울산사람들>전에는 증곡 천재동, 석남 송석하, 외솔 최현배 3인전으로 진행됐다. 증곡의 가면제작 활동에는 조선민속학회의 산파였던 석남 송석하(1904~1948)가 수집한 사진 자료가 밑거름이 됐다. 가면은 천재동에 의해 연극 소품으로, 전시예술로 승화되어 당시 문화재청에 알려지고, 가면제작부문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예술성을 지닌 증곡의 탈바가지 가면은 고향사람들의 자아상인 것이다. 증곡은 전국의 전래동요 400수를 수집해 노래에 맞는 고향사람을 캐릭터로 한 동요민속화를 그렸으며 동요화집을 남겼다. 증곡이 정립한 부산시 문화재로는 동래야류, 동래학춤, 동래지신밟기가 있다. 동래부사 송상현 군사행렬 단독채록 및 도해화, 동래야류길놀이행렬순도를 남겼다.

증곡은 팔순에 접어들자 고향을 무척 그리워했다. 계변천신 사상으로 새로이 학술적 조명된 울산학춤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아쉽게도 그가 고향을 오래 떠난 세월의 억겁이리라. 증곡은 말년에 지인이었던 김태근(1920~2011)과 처용암을 찾으며 희곡 <바다를 건너가는 처용무> 무대를 각계에 호소하였지만, 지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가 채록한 <웅촌외막지게 목발장단놀이>는 시도됐으나 넌버블 퍼포먼스로 확장되지 못해 안타깝다. 그는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를 남기고 2개월 후 타계했다.

필자는 증곡의 타계이후 탄생 100주년 회고전을 비롯하여 특별전과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아스티 <피아캐슬> 전시를 가졌다. <울산 관광 정책적 관점에서 본 천재동의 문화적 가치의 확장성>(2018 졸고)을 통해 예인(藝人) 증곡을 삶을 조명하였으며, 울산에서의 척박한 시절 활약상과 고향초대 문예활동을 다뤘고, 그가 고향을 위해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편협한 시각을 바로 잡는데 주력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4일(음 6.12) 증곡 천재동의 기일을 하루 앞두고, 극단 푸른가시 전우수 대표와 함께 유족대표 천영배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극단 푸른가시의 창단30주년에 오른 연극의 재공연으로 7월 20일 갖게 될 연극 천재동의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동래야류 말뚝이탈이 필요했다. 예인 천재동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가면제작부문 인간문화재였다.
그가 활약했던 고향에는 방어진항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울산최초 문예부흥지였던 방어진에는 미술전람회 장소(중진길 300)와 청년극단과 아동극단을 했었던 곳(중진길 56)이 있지만 보존·활용한다는 얘기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가 독립운동가의 외동딸과 결혼해 살았던 생가터는 타인이 살고 있지만 확보 계획조차 수립되어 있지 않다. 2018년 서진문 90주기에는 정천석 동구청장이 참석하였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에는 서진문 묘역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천재동의 유작과 기록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 작업과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천재동 기념관·서진문 독립관에는 유작 전시, 공연, 전수 및 체험공간이 확보되어져야 하며, 복합공간에 관한 조속한 예비타당성 조사 용역이 필요하다. 유족대표인 천영배 선생 또한 방어진 출신으로 천재동으로부터 박바가지탈 제작과 토우를 전수받았다. 그의 귀환은 바로 예인 천재동의 귀환인 것이다. 그가 방어진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후학을 가르치고 전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조성에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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