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만평의 프랑스 베르사유궁 정원
꽃 100만 송이·나무 35만 그루
관광객 발길 붙잡는 오솔길 43㎞

 
한·중·일 3국 정원 대조적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 그대로 즐겨
태화강정원 대숲·철새 등 특색 살려야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을 알리는 상징물.
김병길 주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몸은 정원(庭園)이요, 우리의 의지는 정원사”라는 말을 남겼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읊조렸다.

인류의 DNA에는 태곳적부터 식물과 정원이 잠재해 있었다.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와 풀은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가장 절실한 인류의 반려다. 정원은 인류 최고의 학교다.

모든 것이 빨라지기만 하는 시대, 인내심을 갖고 세상의 흐름을 보는 지혜를 배울 수 있으니까. 정원 가꾸기는 계절의 흐름과 대지의 리듬을 따르는 일이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관조하게 된다. 볼테르가 ‘자신의 정원을 가꿀줄 아는 자는 인생을 아는 자’라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헤르만 헤세, 클로드 모네, 윈스턴 처칠 같은 위인들이 유능한 정원사이기도 했던 것은 정원이 지혜를 주기 때문이었다. 정원을 계획하고 만들고 가꾸는 사람이 정원사이다. 순수한 우리말의 ‘동산바치’는 바로 정원사였다.

서양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보다 많은 위락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공원이 생기게 됐다. 따라서 중세 또는 근세의 대저택이나 궁궐, 수도원 등에 정원을 만드는 조원술에서 탈피해 이를 사전에 계획하는 조경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조경학의 분야가 확대되어 더더욱 정원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원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정원이 건축에 딸린 뜰과 동산으로 인공적인 건축공간에 자연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건축이 건축답게 지어기지 시작한 뒤부터로 추측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정원이 발달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기록으로 미루어 고구려 궁궐 건축이나 신라 궁궐에 이미 정원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정원은 경주 안압지와 임해전지라 하겠다.

동양의 정원을 보면 세부적으로 한·중·일의 정원은 각각 특징이 있다. 중국 정원은 보통 정원 속에 대자연의 산악·폭포·계곡·동굴 등을 모방하여 만들어 마치 대자연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또 기암괴석을 늘어놓고 물·창살·난간·담장 등이 현란하다.

반면 일본 정원은 많은 제약과 규칙을 두어 인공적인 미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를 보고 즐기며, 사람이나 건축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했다. 우리나라 정원의 중요한 구성요소의 하나가 연못(池)이다. 연못이 없으면 정자를 지어 흐르는 시냇물을 볼 수 있게 했다. 자연스럽게 정원을 가꾸었으며 결코 억지로 꾸미지는 않는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정원을 지어 그곳에서 살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호남의 담양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 강진구 성전면 월남리 백운동정원이 은둔자의 로망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나무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에 결코 늘푸른 나무나 잔디를 심지않고, 봄이면 움트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며 겨울이면 힘찬 가지에 눈꽃이 하얗게 피는 활엽수를 심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나 집이나 뜨락 모두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자연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우리 정원의 모습이다.

지난 5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총괄정원사 알랭 바라통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1976년 인턴정원사로 출발해 1982년 총괄정원사가 된 바라통은 정원사 200여명을 총지휘하고 건축가와 협의해 정원 디자인에도 참여한다. 850ha(약257만평)에 이르는 베르사유 궁 정원은 여행자들이 발을 들여놓으면 떠나기가 아쉬운 공간이다.

꽃 100만송이, 나무 35만그루, 그 사이사이로 43km에 이르는 오솔길이 나 있다. 이 방대한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 정원사와 건축가가 협력하는 것이 특이하다. 베르사유 궁 정원은 약 100년마다 보식 작업을 하는데 1997년엔 강력한 태풍으로 대대적인 보식을 진행했다.

정원사 바라통은 그의 저서 ‘베르사유의 정원사'에서 “은퇴하는 날, 오솔길을 거닐며 내가 심은 나무들이 굳건하게 자란 모습을 바라보려 했던 오랜 소망이 물거품이 됐다”고 그 때를 회상했다.

우리나라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월 5일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였던 바빌론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바비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신바빌로니아의 수도로 현재 이라크는 1983년부터 36년간 노력한 끝에 바빌론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꿈을 이뤘다.

바빌론을 대표하는 유적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혔던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이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왕이 향수병에 걸린 왕비를 위해 지은 초대형 건물이다.

그리스 역사학자 디오도로스는 향기를 뿜어내는 꽃,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석류,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수에서 튀는 물방울 모두가 “인간 영역 밖의 아름다움”이라고 공중정원을 묘사했다. 이 거대한 정원은 계단형빌딩을 짓고 그 테라스와 옥상을 정원으로 꾸민 구조였다.

맨 아래층은 가로 세로 각각 400m에 높이는 25m였다. 멀리서 보면 하늘에 정원이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공중정원’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꼭대기의 폭포수를 당시 기술로 어떻게 끌어올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불가사의’로 꼽힌 것도 그 때문이다.

산업화시대 부끄러웠던 환경오염의 상징이었던 태화강변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10리 대숲과 철새들은 국가정원의 진객이다. 이같은 자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국가정원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정원은 인류 최고의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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