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열아홉에 장원 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가 됐다. 뛰어난 학식과 젊은 나이에 오른 높은 벼슬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을에서 유명하다는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스님이 대답하기를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고 하자,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 것 뿐이오?”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스님이 녹차나 한잔하고 가시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그의 찻잔에 찻물이 넘치는데도 계속 차를 따르자,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자 스님이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그의 말에 부끄러워 급히 방을 나가려다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맹사성(1360~1438)의 일화다. 맹사성은 이날 스님과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 훗날 조선의 청백리요 명재상이 되었다. 오만(傲慢)은 ‘태도가 건방지고 행동이 거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오만이 넘치면 반드시 독선에 빠지고 결과가 나쁘다.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대한민국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나’ ‘좌냐 우냐가 아닌 애국(愛國)이냐 이적(利敵)이냐’다”라고 했다. 
조 수석의 ‘이적’ 발언을 두고 찬반(贊反) 여론이 갈렸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행위 및 찬양고무 처벌의 반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국보법 폐지 운동을 했던 그가 그 용어와 논리를 정치적 공격 용어로 사용한 것이 충격적이다. 이적이라는 말의 역사를 잘 알면서 그런 말을 썼다는 것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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