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과 워커밸’ 동전양면 같아
 감정노동자와 고객 사이 조화로움
 일상의 보람과 삶의 질 높이는 방법

최영진
노래샘 발행인/행복한 노래교실 원장

연일 기승을 부리는 찜통더위를 피해 대형 쇼핑센터에 들렸다가 ‘직원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봤다. 궁금증에 엉뚱한 호기심도 작동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일간지에서 비슷한 기사를 읽었다. 종업원들이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식당과 함께 ‘반말로 주문하심 반말로 주문받음’이라고 써 붙인 커피숍 등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새삼 느끼는 바가 컸다. 필자와 같은 직업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서다.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했다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흔히 ‘감정 노동자’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만은 좀 다른 분위기로 읽힌다. 업무 중에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해방하고픈 진솔한 마음들이 용기 있는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이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낸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도 ‘손님은 왕이다’라는 의식의 소유자가 가끔 있다. 고객중심 경영이 대세인 때에 배운 자본주의 논리가 은연중 배인 탓일 게다. 하지만 이제는 불합리한 조직문화는 서둘러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진상 손님의 ‘갑질’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한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손님이 직원에게 음식을 던져 공분을 샀다. 또 백화점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집어 던지는 고객, 주차요원의 뺨을 때리는 손님, 일명 ‘땅콩 회항 사건’ 등 반말과 욕설은 물론이고 폭행, 협박, 성희롱을 일삼는 악성 고객들의 만행은 비난을 넘어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됐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해가 갈수록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당하고 수치스런 일이 일어나도 인내와 절제, 순응으로만 일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하소연은 거의 절규에 가깝다. 안쓰럽고도 절박한 그들의 목소리를 결코 허투로 넘겨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충분히 설득력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고민해보는 게 순서일 듯하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18일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다고 들었다. 여기에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처’를 사업주의 의무사항으로 추가했다고 한다. 판매직 노동자 등은 고객에게 폭언이나 정신적 피해를 당했을 경우 사업주에게 업무 중단 등을 요구할 수 있고, 사업주가 이런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면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벌칙 조항도 생겼다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법안이어서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도 했다. 공감한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며 반발하는 감정노동자들도 있다고 한다. 자신들을 온전히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나가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항변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번 울산 남구정신건강증진센터와 롯데호텔울산이 감정노동자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업무 협약식을 가진 것은 매우 좋게 보였다.

롯데호텔울산의 임직원들이 보다 건강한 근무환경을 제공받음으로써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짐은 물론이고 더불어 이 같은 기업문화가 더 많은 사업장으로 확산되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요즘 ‘워커밸(Worker-Customer Balance)’ 운동이 관심을 끌고 있다. ‘근로자와 고객 사이의 균형’이란 뜻을 가진 ‘워커밸’은 고객에 시달리는 감정 노동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생겼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자는 이른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노동의 양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워커밸’은 노동의 질적 향상을 통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는 게 키워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고객이 되는 셈이 아닌가. 입장이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감정노동자와 고객 사이의 조화로움이 결국 일상의 보람과 삶의 질을 높이는 법이다. ‘매너가 소비자를 만든다.(Manners Maketh the Consumer)’는 말처럼 존중받는 소비자가 되려면 먼저 고객으로서의 매너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워라밸’과 ‘워커밸’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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