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태극기, 1883년 조선국기 채택 후 정식국기 사용
나라를 알리는 상징…국민을 결속시키는 구심체
신성히 여겨야 하고 결코 함부로 다뤄서도 안돼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는 일본 천황 히로히또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눌하고 느릿하게 힘을 잃은 비통한 목소리였다. 
일제치하 ‘민족치욕시대’ 35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 소리에 국민 모두 일순간 멍해졌다. 영원히 망할 것 같지 않던 일본이 이렇게 무너질 줄 짐작이나 했었을까? 사람들은 오히려 맥이 빠지고 허탈해 했다. 
외국 공사의 어떤 여성은 그 날을 목격하고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8월 15일, 서울은 마치 쥐 죽은 듯 고요하였다. 시민들은 일본의 항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냥 기다렸다. 기쁨과 희망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환희에 가득 찬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이 온 시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텅 비고 조용하기만 하였던 서울, 수많은 사람이 파도처럼 광장과 거리와 골목을 가득 메웠다. 끝없는 흰 바다가 흔들리며 들끓는 듯하였다.” 
그 이튿날, 마침내 환희와 감동과 서러웠던 지난날이 복받쳐 함성과 함께 만세를 외치는 군중들의 물결이 노도처럼 서울 광장으로 밀려들었다. 어디 그 곳 뿐 이였겠는가? 방방곡곡 도시마다 시골 장터마다 그렇게 밀려들었을 것이다. 그동안 어디에 숨겨 두었는지 군중들은 손에 손엔 태극기 하나씩은 다 들고 있었다. 한민족의 정체성이요 자존의 상징인 태극기를 그날을 위해 장롱 깊숙이 숨겨 두었다가 비로소 자유로운 깃발로 온 누리에 펄럭이게 하였다. 
노도의 ‘물결’ 이었던 ‘태극기’ 탄생의 배경은 청나라를 사대(事大)하던 조선 말 국제 정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기의 필요성이 생겼다. 임오군란을 조장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대원군(大院君)을 잡아 톈진[天津]으로 납치해가는 일을 주도한 청나라 사신 마건충의 갑질 제안은, 자기나라 국기인 ‘황룡기’에 착안하여 조선 국기는 동쪽을 의미하는 색인 ‘청룡기’로 하되 청국기의 용과 구별하여 용 발톱을 다섯 개로 하지 말고 네 개로 하자는 것이었고. 국기의 바탕은 흰색으로 백성을, 푸른 구름을 아래로 깔아 관원을 나타내며, 그 위에다 용을 그려 임금을 상징함으로써 군관민 조화를 표방하자고 했다. 굳이 용을 도입시키려 한 것이며, 용 발톱에 차등을 두려 했음은 조선이 청국의 속국임을 국기에 나타내려는 음흉한 저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미수호통상’ 조약을 위해 화도진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 않겠다며, 조선 대표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고종은 조선왕을 상징하는 어기(御旗)인 ‘태극팔괘도’ 일부를 변형하여 국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 색을 화합시킨 원(圓)을 그려 넣은 기를 제작 하였다. 이는 고종이 계승하고자 했던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깃발은 다소 일본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팔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려 놓으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태극기 문양’을 정했다. 다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고,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게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친 태극기를 고종(1883년)은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하였다. 그 후 황제(1897년)는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조선 국기를 그대로 ‘대한제국 국기’로 사용하게 하였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태극기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공식 국기로 사용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 정식 국기로 사용되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국기는 두 가지 쓸모에서 제작이 된다. 그 하나는 나라를 알리는 상징의 쓸모요, 다른 하나는 국민을 결속시키는 구심체로 사용한다. 어떤 나라는 대내외용으로 나누어 두 개의 국기를 가진 나라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기는 태극기 하나뿐이다. 3.1만세 운동, 광복을 맞이한 환희, “꿈은 이루어진다” 월드컵 4강 도약의 태극기 물결 등, 태극기는 우리 민족을 한 덩어리로 묶는 구심체이므로 신성하게 여겨야 할 것이며, 결코 함부로 다뤄서도 안 될 것이다. 가치를 높이여 자자손손 마땅히 ‘대한민국 상징’으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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