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용백합초등학교 교사

기업에서 ‘협업’ 번영의 전제 아닌 생존의 조건
협력·소통하려면 인성·배려·공감 능력 등 요구
도덕적 가치가 이젠 실질적 ‘능력’이 되는 시대

지난 4월에 개봉해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히어로들의 집합체인 어벤져스가 우주 생명체 절반을 사라지게 한 극강의 악당 타노스에 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초반, 살아남은 히어로들이 기지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어벤져스의 히어로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진 ‘캡틴 마블’은 다른 행성에서 약한 이들을 돕다가 구호 신호를 받고 돌아와서는, 자신이 당장 가서 타노스를 제압하겠다고 얘기한다. 슈퍼맨처럼 혼자 힘으로 우주를 광속으로 비행할 수 있고, 큰 우주선을 단번에 파괴시킬 수 있는 캡틴 마블 정도의 능력이라면 혼자서 타노스를 제압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다른 히어로 블랙 위도우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린 팀으로 움직여 왔어요.” 난 이 장면을 보면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반영했다고 생각했다.
과거처럼 뛰어난 한 사람이 기업을 일으키고, 나라를 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한 사람의 유능한 전문가보다 다양성을 갖춘 집단 지성이 문제의 해법을 더 잘 구한다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애플, 구글, 알리리바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의 성공엔, 다른 기업, 분야와의 협업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이미 나왔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 이상이 된다는 단순한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 수십 배, 수백 배의 효과를 가져 온 결과를 우린 이미 보고 있다.
반대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역행한 기업들은 어떤가. 그 대표적인 예로 ‘소니’가 자주 언급된다. 90년대 세계를 호령했던 소니는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렸다. 그랬던 소니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건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니의 전 CEO 하워드 스트링어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소니는 부서 이기주의가 팽배해서 리더십이 통하지 않았다.”
이 말은 즉, 소니 내부엔 부서 간 협업이 실종된 상태였고, 그것이 곧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몰락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세계에서 이제 협업은 번영의 전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교육 분야도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였다. 20세기까지는 3R(읽기, 쓰기, 셈하기)을 강조하였다. 이제는 21세기에 길러야 할 핵심 역량으로 4C(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가 강조되고 있다. OECD에서 발표한 21세기 핵심 역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핵심 역량들을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의사소통능력’(협업 능력)이다. 
자녀가 있다면 공개 수업에 참여하여 수업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수업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수직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 그리고 개별적인 과제 해결 위주였다면, 요즘 제시되는 수업 방법론은 협력을 바탕으로 하여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학급엔 전통적인 의미로 뛰어난 학생이 있는가 하면, 21세기형 인재에 가까운 학생들도 있다. 소위 머리 좋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숫자로 측정치가 나오는 지필 평가를 치면 상위권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커서 살아갈 세계에선, 이것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요구된다. 바로 친구들과 얼마나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느냐, 상대를 배려하며 서로의 의견을 모아 최선의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소위 공부를 잘하는 아이 중에, 모둠 활동만 하면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고 자기 위주로 활동을 이끌어가려고 고집을 부리는 학생이 있다. 반면에 개별적인 과제 해결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친구들과의 공동의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친구들 간의 의견을 잘 조율하는 학생도 있다. 미래 사회에선 후자의 학생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확신한다. 
학부모라면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내 아이가 갖고 오는 통지표에, ‘학업 성취도가 고루 우수하며’ 같은 문구보다 ‘모둠원과 잘 협력하여 과제를 해결하고’ 같은 문구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협력하고 어울리려면 인성과 배려, 공감 능력 등이 요구된다. 단지 도덕적 가치로 치부되던 가치가 이젠 실질적 ‘능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히어로도 협업하는 시대다. 다른 친구와 소통하지 않고, 오만하고 잘난 척 작렬했던 전교 1등이 성공하는 시대가 저만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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