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0월 북한 노동신문은 평양 중심에서 약 40㎞ 떨어진 평안남도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에서 단군과 그의 부인 유골이 발견됐다며 대서특필했다. 단군을 실존 인물로 재탄생시킨 것은 전적으로 김일성의 작품이었다. 만약 김일성이 100일 만 더 살았다면 개천절은 남북이 함께 쉬는 공휴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정일은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는 단군이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족보는 ‘김일성 민족’‘태양 민족’‘김정일 민족’으로 정리됐으며 1996년 ‘주체’ 연호까지 도입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단군릉 복원 뒤 대기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단군의 아버지라는 환웅 신의 진노 때문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개천절인 10월 3일, 서울 도심일대는 ‘조국 out’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북한 선전 매체 메아리는 이를 ‘보수의 못된 짓거리’라며 “아마 저 하늘의 단군 성조(聖祖)께서도 대노(大怒)하시어 천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했다. 
‘광장’에선 늘 열세였던 한국당은 개천절 날 도심을 메운 인파에 고무됐다. 효순·미선(2002년)-광우병(2008년)-국정농단(2016년) 등 2000년대 들어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광장정치’를 맛보면서 밀리지 않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초동 집회로 맞서면서 진영 간 동원 대결의 끝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대의 민주주의 결정체인 국회가 광장 정치에 무한정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의회정치의 무력, 거리 정치의 득세’의 기류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직접 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하면서 예견됐던 부작용 혹은 역풍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문제는 현 시국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우려다. 고(故)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사회 전반에 참여 욕구가 팽배한 데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능력이 떨어지면 국가는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광장에서 벌어지는 극단과 혐오 정치를 풀 수 있는 첫 단추는 결국 대통령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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