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태 울산학연구센터장

1경, 하구(河口) 배꼽
태화강 하구는 태평양과 연결된 배꼽이다. 배꼽에서 대양과 일체감을 느낀다. 이곳을 통해 자양을 얻으며 울산이 성장하고 나도 자랐다. 조국 근대화의 ‘산실’과 ‘요람’이란 말도 실감한다. 
태화와 태평의 발음과 뜻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태화란 이름은 중국 태화지(池)와 신라 태화사(寺)에 유래한다. 불국의 평화를 희구한 자장율사의 신념이 배어 있다. 태평양 즉 퍼시픽(Pacific)은 평화를 뜻하는 팍스(Pax)·피스(Peace)와 같은 언어계열이다. 퍼시픽에는 ‘고요한 대양’을 처음 본 에스파니아 항해가의 직관이 스며있다. 
울산의 옴파로스(Omphalos), 태화강 하구 배꼽에는 많은 사연이 있다. 태화사와 자장 외에도 박제상과 발선처, 반고사와 원효, 동축사와 아소카왕, 계변성과 박윤웅, 충숙공과 통신사, 염포개항과 임란, 그리고 근현대 울산이 함축돼 있다.
 
2경, 곧은 통경(通景) 
태화강 하구에서 상류인 가지산까지 툭 틔었다.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이 일직선에 놓였다. 물이 관류하고 빛이 관통하며 경관이 직통한다. 길게 틔인 경관은 밝고 시원하며 상서롭다. 태화강 줄기는 해 뜨고 지는 쪽으로 뻗어 있다. 일출의 빛이 가장 빨리 전달되는 통로다. 이 방위에 동축사 태화사 입암사 석남사가 있다. 
통경이 연출하는 일출과 일몰 풍경은 넓고 길다. 산악병풍 위에 펼쳐지는 일몰은 장대하다. 가지산 신불산 위의 적설 또한 한 눈에 볼 수 있다. 먼 산 능선에 찬 수건처럼 얹힌 눈은 도심의 열기를 식혀 준다. 

3경, 굴곡(屈曲) 유로 
태화강은 급하지 않으며 느릿하다. 상류에 9곡이 있고, 중류 선바위와 십리대밭 앞이 커다란 곡류다. 
굴불·굴화·굴헐·굴아화는 울산의 옛 이름이다. 굽은 강의 형태에서 따왔다. 굽은 강은 물을 얻기도 쉽고 버리기도 쉽다. 고대에는 야수나 적을 방어하기에도 좋았다. 유럽의 저명한 도시들이 라인강·다뉴브강 곡류가 만든 땅에 형성된 것과 비견된다. 
4경, 은월(隱月) 12봉 
국가정원 건너편 나란한 열 두 봉우리는 장구한 세월이 깎은 흔적이다. 높이는 동일하고 빗면은 삼각형이다. 높이가 같은 것은 동일한 시기에 형성돼 동일한 강도로 풍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산의 다릿발이 삼각형인 것은 ‘산각말단면(山脚末端面)’의 전형이다. 모든 산 다릿발의 단면은 삼각형이다. 곡류와 삼각면은 자연에 내재된 기하학을 보여준다. 인공조경이 부질없다. 

5경, 충적(沖積) 지형 
국가정원 아래에는 고대의 바다가 묻혀있다. 3,000년 전의 바다다. 울산의 지형을 샅샅이 훑은 연구자들이 복원한 사실이다. 고(古) 울산만의 가장자리였던 이곳에는 해초가 무성하고 고래가 회유했던 곳이다. 태화들 5m 깊이 아래 조개와 굴 껍데기가 묻혀있다. 십리대밭 매장문화재를 발굴하던 중 확인됐다. 어딘가에 고래 뼈가 묻혀있을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면 켜켜이 묻혀있는 고(古) 울산만의 연원을 더듬게 된다. 

6경, 도심 어항(魚缸) 
태화강은 도심의 어항이자 수족관이다. 봄철 황어는 황금 예복을 입고 짝짓기에 나선다. 늦가을 보랏빛 옷을 입은 연어는 이곳에 들어와 먼 여행을 마감한다. 어족들은 강의 양 켠에 즐비한 아파트 주민들이 잠들고 있는 사이에 물길을 거슬러 간다. 산란과 짝짓기의 요란한 출렁거림이 꿈결처럼 일렁거려도 잠을 설치지 않는다. 자연의 정교한 시계가 돌아가는 것을 아파트 안에서 감상한다.

7경, 강변 야생(野生) 
밤길 강변을 산책하면 숲 속에서 반짝이는 두 눈을 본다. 너구리다. 강변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거느리고 어슬렁거린다. 사람과 점차 친해지고 있다. 중류 쪽에서는 동남참게가 옆걸음치고 수달이 들락거리며 가족 수를 늘리는 중이다. 여름에는 백로, 겨울에는 까마귀 떼가 도심 대밭에 날아들어 ‘산업도시’ 황량한 이름을 지워준다. 범람원에서 꽃양귀비와 안개꽃이 경염할 때 얕은 강가에는 버들과 부들이 수수하다. 
만류일귀(萬流一歸), 모든 샛강은 큰 강에 흘러들고 그 물은 바다에 이른다. 태화강 발원지에서 하류까지 경관해석은 천 갈래 만 갈래일 것이다. 선인들은 태화강 8경을 읊었지만 나에게는 하나 부족 7가지. ‘백리 죽림(竹林)’이 생기면 마저 채우고 싶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