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 학생이 출렁이는 학급 경영 어렵지만
문제 발생땐 아이들 스스로 톡방서 의논·해결
배려·존중·토론·투표 민주주의 자라고 있어

신호현 시인

학급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 카카오 톡방(이후 카톡방)에 던지면 아이들이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한두 명 그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다른 아이들은 관망하다가 그 문제의 본질이 서서히 드러나면 다수의 아이들이 참여해 그 문제를 해결한다. 마치 야생의 사자들이 큰 먹잇감이 보이면 처음에는 멀리 지켜보다가 한두 마리가 그 먹잇감에 접근해 포획을 시도하다가 먹잇감의 본질이 드러나면 모두가 달려들어 협력해 먹이를 잡는데 최선을 다한다. 먹잇감이 아무리 크고 힘이 세더라도 여럿의 사자들이 달려들면 결국에는 쓰러지고 만다.

학교 선생님으로 수십 년 살아왔음에도 학급 담임을 하다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도배공이 도배 일을 수십 년 했다면 눈 감고도 자를 재고 칼질할 것이다. 풀칠을 하면 구석에서 딱 맞아떨어질 일이다. 그런데 학급 경영은 그렇지 못하다. ‘경영'이란 계획을 세워 집을 짓는 일처럼 기초부터 철저히 준비를 하고 실행에 옮겨도 날씨나 환경, 작업자들의 조건에 따라 지어지는 집이 다른 것처럼 30여명의 학생들이 출렁이는 교실은 살짝 기울어지면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긴장감이 흐른다. 운전을 수십 년 하면 여유 있게 잘 하겠지만 사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듯이 아침 조회시간에 자리에 모두 앉아만 있어도 감사하다.

최근 들어 카톡방이 생기면서 카톡방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보는 것 같다. 어떤 담임들은 카톡방이 시끄러워 학생들과 함께하지 않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카톡방을 통해 아이들의 움직임을 예측해 읽을 수 있다. 누가 어떤 말을 하고, 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누가 소외되는지도 알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회장 부회장에게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그 이후부터는 회장 부회장이 알아서 풀어나간다. 담임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합창대회가 있다면, 예전에는 담임이 아이들과 곡을 정하고, 지휘자를 뽑고, 연습을 시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요구가 빗나가면 불만이 생기고, 담임으로서 혼내주는 일도 빈번했다. 그런데 카톡방이 생기고부터는 아이들이 곡을 정하고, 지휘자와 반주자를 정하고, 연습시간과 방법, 간식 먹는 시간과 종류까지도 아이들 스스로 정해서 담임에게 알려주면 담임은 너무나 편하다. 연습에 빠질만하면 아이들 스스로 제어하고 서로 응원하면서 수백 개의 대화들이 짧은 시간에 오가고 서로 곤란할 때는 투표로 정한다. 카톡 투표에는 참가자들의 이름과 총 투표수가 정확히 기록되어 불참자 없이 투표하고 공정한 결과 앞에 모두 승복하고는 일언반구 없다.

이런 카톡방은 학급뿐만 아니라 각종 친목모임, 단체에서 비슷하게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요즘 SNS 상의 악플과 댓글 조작으로 민주정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누구의 댓글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얼굴 없는 악마'가 돼 악풀과 거짓정보를 함부로 올리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는 현실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를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댓글을 조작하여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대부분의 경제 범죄가 차명 계좌로 이뤄지기에 ‘금융실명제'를 실시함으로써 많은 경제 범죄를 줄였던 것처럼 'SNS 실명제'가 이줘진다면 포털사이트 부정이 없어지지 않을까?

어른들이 늘 긴장 속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듯이 아이들 또한 한 교실에서 지내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들이 안고 산다. 12교과의 선생님들이 저마다 과제를 던져주고 매시간 새로운 도전을 주고, 긴장과 반전 속에 생활한다. 30여명의 친구들과 갈등 없이 지내는 것도 긴장인데 갈등이 생기면 폭풍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늘 아이들의 관계와 상황을 들여다봐야 하는 담임도 긴장이다.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전쟁인 교실에서 서로 배려하고 먼저 베풀어 주고 웃어주는 학급이 된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아이들의 카톡방에서는 배려와 존중, 토론과 투표의 민주주의가 자라고 있다. 카톡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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