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월 11일은 막대기 모양의 과자를 연상케 한다고 연인끼리 과자를 나눈다. 11월은 특징이 없는 달이다. 흔한 공휴일도 하루 없다. 노벰버(November), 영어 11월은 ‘NO’로 시작해서 아무것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럴듯하다. 한해의 마지막도 장식 못하는, 끝에서 두 번째 달이어서 특별히 기억나는 날이 없다. 
영어 ‘fall’이 가을을 뜻하는 것은 조락(凋落) 즉 ‘시듦’ 그것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에서 모국어의 겸허함을 이처럼 울림 깊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조락을 재촉하는 서리(霜)야 말로 위엄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추상(秋霜) 같은 질책(叱責)’이니 ‘서릿발 같은 명령’이 그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형벌을 담당하는 관리를 추관(秋官)이라고 불렀다. 하얗게 내린 서리는 겨울을 재촉한다. 떠나는 가을이 아쉽지만 이제는 겨울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스스로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고,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라는 채근담(菜根譚)의 글귀 춘풍추상(春風秋霜)이 아쉽게 들린다. 
국민에겐 봄바람처럼 너그럽고 후하게, 공직자 스스로에겐 박하고 추상같이 엄해야 한다는 다짐을 들은 듯 하나 막상 느끼기에는 공허하기 만하다. ‘봄바람’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낀 듯 찝찝하고, 추상같은 ‘가을 서리’보다는 ‘내로남불’이 더 익숙하다. 말만 옮긴다고 채근을 씹던 선현의 지혜가 구현되는 건 아니다. 
‘추파(秋波)’는 ‘가을 호수의 잔잔하게 이는 물결’이다. 가을 산골짜기의 계곡 물은 풍성하고 맑다. 낙엽이 가득한 산에서도 겨울을 대비하며 머금었던 물기를 뱉어 내느라 풍성하고 맑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을 호수의 물은 미인의 눈에 비유되기도 한다. 가을 바람이 스치면 잔잔한 물결이 이는데, 마치 미인이 잔잔한 눈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추파는 임을 향해 보내는 눈웃음이 되었다. 추풍 낙엽 속으로 떠나는 가을이 시나브로 추파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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