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 투쟁에 참여한 강경대 명지대생이 백골단 소속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유해가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히고 운동권은 대혼란에 빠졌다. 4월29일 전남대생 박승희가 분신해 5월19일 사망했고, 모두 11명이 목숨이 잇따라 사라지는 분신정국(焚身政局)으로 이어졌다. 
김지하 시인은 조선일보 1991년 5월5일자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는 칼럼에서 분신자살을 비판했다. 5월8일엔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강경대의 죽음을 비판했다가 “강의 내용을 갖고 스승을 비방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현실에 배반감을 느낀다”면서 사표를 냈다. 
잇따라 분신 사망 배후설이 확산됐다. 박홍 서강대 총장은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5월8일 서강대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자 “죽음의 블랙리스트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 어둠의 세력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박홍 총장은 1994년 7월 19일 전국 14개 대학 총장이 참석한 청와대 오찬에서 “학생운동권 배후에 사노맹, 사노총, 김정일이 있다. 그들은 북한 노동신문이나 팩시밀리를 통해 지령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수많은 주사파(主思波)가 각계에 침투해 있다. 북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교수가 됐다”며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주장을 이어갔고, 박 총장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 총장에게는 ‘극우사제’라는 딱지가 붙었으나, 그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사제였다.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받을 때 함께했고, 전태일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가 공안 당국에 끌려가 심문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 투쟁으로 어지러웠던 한 시대 “주사파의 실체를 고발한 것이 생애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했던 박 전 총장이 향년 78세로 선종(善終)했다. 주사파·친북세력이나 공안정국이 없는 하늘 나라에서 영면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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