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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두뇌집단(Think Tank)양성 교육장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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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식 전 울산대 교수
  • 승인 2019.11.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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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전 울산대교수

성리학 발전 공헌한 지역 존현 봉사…후학들에게 롤 모델 제시
강론통해 두뇌집단 양성한 조선왕조 고유의 교육적 가치 인정
세계문화유산 등재돼…‘존현양사’ 보편적 교육가치 되새겨야

조선사회는 유교적인 정치이념을 기반으로 양반관료정치 체제를 형성하였다. 
주자학적인 조선왕조에서 양반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는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조선 초기의 양반관리와 훈구대신(勳舊大臣)은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토지인 과전(科田)과 공신전(功臣田)의 세습으로 막대한 농장을 점유하였다. 

한명회 등 훈구대신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된 성종은 너무 비대해가는 훈신세력을 견제하고 왕권강화를 위해 영남의 사림(士林)인 김종직일파를 등용하였다. 김굉필 등 김종직의 사림파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언론 삼사(三司)에 종사하며 훈구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성종은 훈구파인 훈신(勳臣)과 사림간의 세력균형으로 안정적인 조선왕조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조선 중기 이후 사림정치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언론 삼사를 장악한 사림파는 훈신과 대립하면서 또 하나의 궁중세력인 척신(戚臣)까지 뒤 엉켜 연산군부터 명종까지 네 차례의 사화가 일어나 사림들은 격심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사림들은 서원(書院)을 기반으로, 16세기 후반 선조 때에 중앙정치 무대에 재등장하면서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림 정치가 시작되었다. 

사림의 세력기반인 서원은 지방의 자제들을 자신들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가는 학문적 이념의 승계인 두뇌 집단이 되었고, 결국 주자학의 정통성 시비(사단 칠정)는 지역과 맞물려 분립된 영남학파와 기호학파가 정치와 관련되면서 붕당(朋黨)정치로 치달았다. 

서원의 기원은 중종(1543년)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모델로 주자학(성리학)을 도입한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지방 유생(儒生)들에게 독서와 강학(講學)의 편의를 준 백운동서원(경북 영주)에서 비롯되었다. 즉 서원은 사림들이 명망이 높은 선현(先賢)을 제사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한 기관으로, 성균관, 향교와 함께 유림의 3대 학문의 전당으로 불려졌다. 

풍기군수 퇴계 이황이 백운동서원을 국가가 공인하는 사액(賜額)서원으로 지정해줄 것을 명종에게 건의하여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현판과 함께 노비, 서적 등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의 효시를 이루었다. 서원의 설립은 사림파가 정치의 주도권을 잡은 선조 때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조선조 성리학의 융성은 서원을 터전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지방교육의 중심이었던 관학(官學)인 향교(鄕校)는 서원의 발달과 함께 점차적으로 쇠퇴하였다.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인 화양서원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화양서원이 검은 도장을 찍어 발행한 공한인 화양묵패(華陽墨牌)는 지방 수령도 거역하지 못하는 재산 착취수단으로 사용되어 백성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서원이 점차 민폐를 끼치는 온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17세기 후반 서원이 선현의 봉사(奉祀)와 후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앞세우는 존현양사(尊賢養士)의 기본정신이 쇠퇴해지고, 한 사람을 중복해서 제향(祭享)하는 첩설(疊設)과 문중의 조상 등 가문의 명예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서원의 난립을 초래하였다. 강론(講論)보다는 단순히 제사만을 지내는 문중의 사당인 가묘(家廟)로 전락할 정도로 문란해져 서원무용론이 대두된 것이다. 

영, 정조는 당쟁을 주도했던 산림(山林)우대정책을 억제하고, 붕당의 근거지인 서원을 정리하였지만 서원의 문란은 근절되지 않았다. 급기야 흥선대원군이 화양서원을 시작으로 47개 사액서원만 남기고 나머지 600여 개 모든 서원에 철폐령을 내리고 즉시 시행하였다(1871년). 

한국서원의 가치는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가 소수서원 등 9개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므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서원이 중국의 서원과 달리 조선을 지탱해온 성리학의 발전에 공헌한 지역의 존현(尊賢)을 봉사하여 후학들에게 롤 모델을 제시한 것과, 강론을 통해 성리학의 학문을 계승하는 두뇌집단을 양성한 조선왕조 고유의 교육적 가치를 인정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정책은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인 사람답게 사는 인도주의를 추구하는 인재 양성시스템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의 서원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여 충, 효와 같은 인간의 덕목(德目)을 실천하는 인문학 교육의 효시였다고 본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서원의 보편적 교육 가치에서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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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전 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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