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복 북구의회 의원

한-일간 외교갈등으로 최전선에서 견뎌야 하는 기업 ‘걱정’
정부, 소재부품 국산화·시장 다변화 등 다양한 선택지 제공
기업, 감정 앞세우는 일 경계…당당함·실천적 사고로 ‘극일’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이 시작되자 전국민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냈다. 이후 일본의 전략물자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펀드에 필승코리아라고 쓰인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소재부품장비 기술 독립’이란 쇼를 했다. 
기술을 아는 기업이 직접 투자할 길을 열어주는 게 핵심인데 기술을 모르는 은행에 부품, 소재를 지원하라며 실패할 정책에 동참을 유도했다. 그러는 동안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가 일본 전범 기업에 4,600억 이상 투자하는 것은 국민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왜 소재 산업을 키우지 않았느냐”며 재팬리스크의 원죄가 중소기업의 부품 소재 구입에 인색한 대기업에 있다는 이분법적인 비판을 하는 수준 낮은 장관의 얼굴도 봤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입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목소리를 높이고 일본산 불매운동을 부추겼다. 일본산 불매운동은 우리의 분노를 일본에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인지 모르나 일본을 굴복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죽창가나 부르며 나라를 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일간 외교갈등이 불거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외교갈등으로 인해 기업 간 거래까지 불똥이 튄 것이 이번이 거의 처음인 듯하다. 그래서 실제 최전선에서 견뎌야 하는 기업이 걱정이다. 
지금은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정치인의 입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이익과 일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전투중인 기업의 구성원이 바로 독립투사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을 공표한 날은 경술국치 84번째 되는 1994년 8월 29일이었다. 신문광고에는 구한말 당시의 태극기가 자리했다. 우리 기업이 기술경쟁력을 무기 삼아 일본 제품을 밀어내는 것이 극일(克日)이다. 
일본의 국내총생산이 1만 달러를 넘어선 1981년 한국은 1,870달러로 일본의 1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의 80%까지 육박했다. 삼성, 현대차, SK, 현대중공업 등 각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한 한국의 자랑스런 글로벌기업이 역할을 했다. 전자, 반도체, 조선 등 많은 산업분야에서 일본의 절대 우위를 극복하고 극일(克日)의 선봉에 기업이 앞장섰다. 
일본을 이기려면 우리 기업의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산업계 각 분야에선 ‘제품의 기본설계는 미국이 하고 핵심 소재 부품은 독일과 일본산이 쓰인다’는 말이 통용된다. 이는 독일과 일본이 섬세한 차이로 우위를 점하는 정밀기계나 화학 분야의 제조업에서 오랜 기술 축적의 시간이 쌓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월등하다. 
이런 초격차 경쟁력은 매뉴얼이 아니라 암묵지의 노하우 형태로 존재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되고 장인정신의 지식으로 무장한 축적의 시간이다. 시간의 축적에는 왕도가 없다. 오랜 시간을 더 집중적으로 달라붙어야 한다. 주52시간제가 연구개발해야 할 곳에 가로막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70%이고 일본보다는 20%이상 낮은 수준이다. 일본과 경쟁하려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임금만 오르니 기업의 경쟁력이 버틸 수 없다. 
안보리스크 역시 핵심 기술을 가진 글로벌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다. 우리에겐 일상적인 일이 되어가는 북한 미사일이 한국을 투자 대상 지역으로 고려하는 글로벌기업의 입장에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이다. 기술 선진 글로벌 기업이 특정국가에 대규모 투자를 할 때 정치 안정성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고용과 투자를 결정하는 글로벌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투자한 곳에 미사일 도발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그것이 핵심 소재, 장비, 초격차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라면 더욱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거꾸로 간 법인세, 북한안보리스크, 각종 규제 등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어 기업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제조업 세계 4강에 들겠다며 제조업 부가가치율을 25%에서 30%로, 신산업을 16%에서 30%로, 일류기업을 573개에서 1,200개로 늘리겠다고 한다. 그냥 읊으면 경제가 돌아가는지 의문스럽다. 실현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어디서 그런 숫자가 나왔는지 설명도 없고 공감하는 산업계 인사를 만난 적도 없다. 아무리 ‘쇼’, ‘영혼 없는 숫자’, ‘남 탓’을 경제 현상을 설명에 익숙하겠지만 더 이상 기업인의 힘을 빼고 의지를 짓누르고 않길 바란다.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은 1970년대부터 제기된 주장이다. 한국은 비교우위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국가다. 모든 것을 국산화 달성한다는 것은 효율이 나쁘며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체를 살리려는 함정에 빠진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을 위해 화학물질부터 설비, 정밀기계까지 전부 담당한다면 조직이 너무 무거워서 시장에서 달릴 수조차 없다. 
아무리 의도가 선해도 경제논리에 어긋나면 정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비교우위의 분업에서 가장 잘하는 것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핵심 산업 글로벌 공급망을 이용하면 된다. 기업은 소비자안전법을 지키고 독과점이나 불공정거래를 하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맘대로 시장에서 뛰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된다. 
기업은 한일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당해 감정을 앞세우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자제력을 잃고 분노에 휘둘려서 안 된다. 정치는 일자리와 고용, 세금을 책임지는 기업들이 분노의 비용을 대신 치르게 해서는 안 되며 기업에게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세계시장 다변화, 인수합병 등 다양한 선택지를 갖도록 해야 한다. 최고 품질을 갖춘 거래처를 찾는 것은 기업의 필연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허세로 가득 찬 정부가 앞장서 기업이 뛰어놀 판을 엎어버렸지만 기업에겐 당당함, 실천적 사고가 있어 극일(克日)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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