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첩보’가 전달되기 수개월 전부터 울산 경찰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김 전 시장을 표적 수사했다는 지적과 달리, 울산 경찰은 정치 수사 논란을 의식해 ‘피고발인’ 신분이던 김 전 시장을 ‘참고인’으로 바꿨다. 당시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이 부임 직후 김 전 시장을 지목해 범죄첩보를 독촉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핵심’은 친동생 연루 의혹… 울산 경찰, 靑 첩보보다 석달 앞서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측근 비리 의혹 가운데 지역사회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은 김 전 시장의 동생이 언급됐던 북구의 아파트 신축사업 관련 사건이다.
김 전 시장의 위세를 등에 업은 친동생 A씨가 북구의 한 아파트 시행권을 대가로 건설업자 B씨로부터 30억원을 받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 중심에는 A씨와 B씨가 체결한 30억원짜리 용역계약서가 등장한다.
건설업자 B씨는 2016년부터 검·경에 수차례 관련 고발을 제기했지만, 수사가 본격화된 것은 2017년 9월께였다. ‘울산시청과 북구청 공무원들이 공모해 아파트 신축사업을 부당하게 승인했다’는 내용으로 직무유기,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공무원 15명을 고발한 것이다.
이듬해인 2018년 1월 B씨는 ‘30억원짜리 용역계약서’를 근거로 김 전 시장과 동생 A씨를 비롯한 총 4명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약 4개월의 공백을 두고 접수된 두 고발장은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다른 사건으로 입력됐지만, 하나의 사안으로 봐야 한다. ‘30억원짜리 용역계약서’는 두번째 고발 전 경찰 수사에서도 수차례 확인된 바 있고, 당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첫번째 수사팀을 ‘허위보고’로 교체한 이유로도 알려져 있다.
이같은 정황으로 보면, 김 전 시장의 동생이 연루된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첩보가 전달된 2017년 11월, 경찰청이 울산청으로 전달한 같은해 12월 28일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 경찰 수사관 “김 전 시장, 2시간만에 참고인으로 변경”
김 전 시장의 동생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피고발인 신분이었던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해 2시간 만에 참고인으로 변경했다”면서 “(추가) 고발장을 검토한 뒤 직접 판단해 팀장 등 상부에 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시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정황이나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정치 논란을 야기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황운하 청장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수사였다면 고발된 김기현 전 시장을 입건해 소환 조사를 했을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당시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사건이 두어달만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발인과 참고인 조사는 원활하게 진행됐지만, 피고발인이던 김 전 시장의 동생 A씨가 잠적하면서 수사가 예상보다 길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고발장을 접수받은 2018년 1월부터 같은해 3월까지 5차례에 걸쳐 A씨에게 출석을 요구하고 집에도 수차례 방문했지만, A씨는 끝내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인 2018년 3월 27일에야 스스로 경찰에 나타났다.

# 검찰 수사과정서 참고인 2명의 석연찮은 진술 번복
경찰은 지난해 7월 김 전 시장의 동생 A씨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이 2차례에 걸쳐 재지휘를 했지만, 그해 12월 경찰은 기소의견을 고수한 채 송치했다.
경찰의 이같은 판단에는 사업을 약속하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A씨의 문자메시지, A씨와 건설업자 B씨가 관련 내용을 주고받는 자리에 동석한 참고인 2명의 진술이 B씨의 주장과 일치하는 점 등이 핵심적이었다. 이들은 김기현 전 시장의 선거캠프 측 인사들로, 경찰은 ‘내부자’의 진술에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은 3번째 검찰 조사에서 뒤집혔다. 결국 검찰은 이들에 대해 불기소를 결정했다.
경찰은 올해 1월 12일 직무유기 등으로 고발된 시청·북구청 공무원 15명 가운데 북구청 공무원 1명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의 불기소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 황운하 울산경찰청장 시절, ‘언론·정치권·공무원·법조계’ 첩보 독촉
2017년 8월 울산경찰청장으로 부임한 황운하 청장은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당시 간부회의 등을 통해 황 청장은 이에 부응하는 범죄 첩보와 수사를 독촉 또는 독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김기현 전 시장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주장 등과 달리, 황 청장이 지시한 것은 언론과 정치권, 공무원, 검찰을 포함한 법조계 관련 비리였다. 이후 울산 경찰은 일명 ‘고래고기 환부사건’으로 검찰과 대립각을 세웠고, 김기현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 사건 외에도 당시 신장열 울주군수의 취업비리 의혹, 남구청의 친환경 에너지 사업 입찰 비리 의혹 등을 수사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