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어찌하면 좋겠느냐·경의 말이 참 아름답다·나는 잘 모른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신하 의견 스스럼 없이 경청하고 칭찬
4차 산업혁명·수소경제시대 필요 ‘진정한 섬김·소통 리더십’

경자년(庚子年) 새해 첫날, 가족과 함께 ‘천문’ 영화를 봤다.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이야기를 담은 ‘천문’을 보는 내내 감동의 연속이었다. 세종의 오랜 숙원이었던 천문 사업의 뜻을 20년 동안 함께 이뤄준 유일한 벗 장영실. ‘천문’에서 두 인물은 신분과 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눈다. 한 나라의 왕과 관노가 과학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나누는 열정과 우정은 그 어떤 사극에서 보여줬던 풍경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세종과 장영실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일을 이뤄낸 협력자인 동시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친구다. 세종이 바랐던 것을 이뤄주는 장영실, 천부적인 재능은 있지만 미천한 신분 때문에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장영실의 꿈을 이뤄준 세종. 이보다 더 멋진 관계가 어디에 있을까. ‘천문’에서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bromance)에 집중하는 장면을 영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브로맨스는 브라더와 로맨스의 합성어다. 각 인물의 역할을 맡은 한석규와 최민식의 클로즈업을 통해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명성이 명불허전이 아니었다.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세종을 가장 빛나는 별이라 말하고, 가장 빛나는 북극성 옆의 별을 선물 받으며 두 사람은 왕과 신하라는 관계라기보다는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나가는 친구의 모습 그대로다. 밤늦게 책을 찾으러 갔을 때 잠에 빠진 장영실을 보고 혹시 깰까 봐 조용히 자리를 피하는 세종. 특히 장영실이 세종의 침상에 들어 별자리를 보여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렇다고 ‘천문’이 행복한 관계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둘의 우정에 시기와 질투를 보이고 음해하려는 신하들과 장영실의 신분 상승을 거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또한 천문 사업이 명나라에 발각되는 등의 위기에서 비롯된 역경도 다룬다. 이럴수록 온갖 악조건을 극복해내는 세종의 지혜와 리더십이 단연 돋보인다. 세종대왕은 본인 스스로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신분을 가리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한 리더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을 받고 있다. 
15세기 조선에서도 그랬듯이 과학기술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임은 자명하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성장동력이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 도약해야 할 시기를 맞아 새로운 과학기술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중장기 로드맵을 재정립해야 한다. 늘상 강조하지만, 혁신성장에는 방향설정과 속도조절이 관건이다. 한번 때를 놓치면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과 연구에 정치 논리가 개입돼선 정말 큰일난다. 
4차 산업혁명 및 수소경제 시대를 맞으면서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과 미래지향적인 과학기술 정책 수립이 더욱 요구된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와 국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메시지로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 또한 리더를 믿고 따라주는 건강한 사회공동체가 필요하다. 특히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세종과 같은 혁신 리더십이 필요하다. 
절대군주인 임금 앞에서 신하가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세종은 늘 3가지 말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경의 말이 참 아름답다.”, “나는 잘 모른다.” 신하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경청하고, 논의 중에 나온 주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세종이다. 진정한 섬김과 소통의 리더십이 아닐 수 없다. 온 백성을 각별한 애민사상으로 감싸 이끄는 리더의 품격이 느껴진다. 자기 진영의 논리에만 매몰된 작금의 우리 처지와는 너무 비교된다. 
역사는 돌고 돈다.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얼마든지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 애민정신 가득한 성군의 모습부터 명나라 간신들을 처단하기 위해 태종의 흑룡포를 입는 모습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세종의 리더십. ‘천문’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냉철히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따라 세종이 더욱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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