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사람들에게 수염은 권위의 상징이다. 이집트의 수호신인 스핑크스에는 본래 수염이 있었다. 영국군이 이집트 사람들의 애국심을 거세하고 이집트를 수호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수염을 떼어갔다. 이집트나 바빌론에서는 왕의 혈통을 이어 받은 귀족이 아니고는 수염을 기르지 못하게 했고, 여왕은 가발 수염을 했어야 할 만큼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에선 각종 시위나 농성을 주도하는 리더들이 예외 없이 콧수염·턱수염·구레나룻을 무성하게 기르는 것이 예외가 없었다. 농성하느라 눈코 뜰 겨를 이 없어 수염을 깎지 못했다기보다, 그 수염으로 뭔가를 과시하려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었다. 
수염이 갖는 권위와 명예는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만년의 조선 태종은 무릎에 앉혀 애지중지했던 외손자가 있었다. 버릇없이 자란 이 외손자가 어느 날 귀엽다고 안아준 한 노 신하의 수염을 주머니칼로 싹둑 잘라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중대시하여 이 어린이를 유배 보내는데, 임금도 동의했다. 수염이 상징하는 정신적 윤리적 의미의 크기를 가늠케 하는 조선시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여당지지자들이 대북사업 ‘한·미 공조’를 강조한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를 집중 공격하고 나섰다.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을 ‘일본 순사’에 빗대는 등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트위터에선 일본계 어머니와 주일 미군이던 아버지 사이에서 일본에서 태어난 해리스 대사에 인종 차별적인 험담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13일 반미·친북 국민주권연대와 청년당은 해리스 미 대사를 겨냥한 참수(斬首) 경연대회를 열고, 해리스 대사의 얼굴 사진 속 콧수염을 떼어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와 가디안 등 외신들은 해리스의 콧수염이 외교 문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외국 대사의 콧수염을 ‘일본 순사’에 빗대는 등의 저급한 인신공격은 우리 정부 지지자들의 수준은 물론 우리 국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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