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태수필가

호주여행 후 이민은 현실도피·애국 아니라던 생각 바껴
식물도 자식은 더 좋은 곳에서 살길 소망 멀리 보내는데
딸·손주 미세먼지·강대국 틈에 고통 겪지않게 하고싶어

북미핵협상이 장기간 소강상태에 들어가는가 하더니 이번엔 방위비 부담을 대폭 인상시키겠다고 미국이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뉴스다. 북한의 핵문제를 왜 미국과 협상을 해야 하는 지, 핵협상과 방위비의 상관관계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약소국의 설움이란 생각에 가슴 한편의 울분은 떨칠 수가 없다. 이럴 때 날씨나마 쾌청했으면 좋으련만 중국 발이니, 국내 요인이니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미세먼지로 몸도 마음도 잔뜩 찌뿌둥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현실과 지리적인 여건이 싫어져 이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푸념을 해본다. 
호주를 여행하기 이전 까지는 이민은 현실도피라고 애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이민과 애국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같이하는 것만이 애국이 아니라고, 유대인 이민자들은 세계 각처에서 자국을 위해 물밑 외교를 하고 있다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나름의 애국에 대한 논리를 만들어 위로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자식만큼은 더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씨앗만큼은 멀리 보내려 하는데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환경을 찾아 어딘들 못 가랴싶었다. 
과수원에서 일을 마치고 나와 보니 옷은 온통 까만 풀씨로 도배가 되어있다. 도깨비바늘 씨앗이 집게바늘로 나의 바지와 상의에 빠금한 틈 없이 입을 앙다물고 붙어있다. 일망타진하겠다고 하나하나 떼어냈다. 
도깨비바늘 어미는 겨울 내내 앙상한 손을 뻗어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말라죽었다. 그러다 사과나무 전지하러 간 내 옷에 제 씨앗을 붙여 딸려 보낸 것이다. 삶이 얼마나 고달팠기에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세상 어디를 간들 이보다 못하기야 할까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라도 딸려 보내기만 하면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일 년도 채 살아보지 않은 것이 고생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다른 곳을 경험해 보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이 있는 지 어떻게 알까. 아마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민들레와 쇠무릎에 속은 것이 아닐까. 다년초인 민들레와 쇠무릎은 오랫동안 뿌리내린 자신의 영토를 보호하려고 억척같은 도전자에게 엉뚱한 길을 가르쳐 줄 수도 있겠다 싶다. 자기들처럼 따라해 보라고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서 시범을 보이면서 공모하여 회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유학과 이민을 알아보라고 호주여행을 보낸 딸과 손주들 생각으로 가슴이 뜨끔하다. 
딸과 손주들은 유학을 알아 볼 겸해서 호주를 여행하고 있다. 내가 호주 여행을 갔다 온 이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좋은 곳이라고 칭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미세먼지 걱정도 없고, 강대국의 틈에 끼어 고통을 격지 않아도 된다고, 세계지도를 놓고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미세먼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등의 환경문제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간의 경쟁 관계, 미중간의 주도권 분쟁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유학이나 이민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십년만 젊어도 이민을 가고 싶다고, 설득하고 권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에게나 딸려 보낸 도깨비바늘 어미같이 무모한 짓을 한 것일까. 호주여행 중 며칠 동안 동행한 지적이고 논리 정연한 호주의 여행사 현지 가이드에게 설득당하여 전화와 메일로 교류하다 딸에게 소개했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은 아닐 거야. 자기가 왔던 길을 정직하게 안내할 거야. 스스로 잘한 선택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 딸과 손주들이 아무 옷에나 붙어가는 도깨비바늘 씨앗 같지는 않다고 위로해본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숨길 수가 없다.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을 뽑아 모으니 한 바가지다. 아궁이 앞에 한참을 섰다가 과수원으로 들어갔다. 본래 있던 자리에 골고루 뿌리고 바가지를 톡톡 두드린다. 경쾌한 소리에 하늘도 맑고 기분도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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