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아프면 쉬는 것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는 집단이익 중요시
코로나19 감염사태 충성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 없어
살아있는 사람들 표정 다시 볼 수 있는 날 하루 빨리 오기를

 

김차중UNIST 디자인·인간공학부 교수

요즘 인간의 면역시스템에 정보가 없었던 새로운 바이러스로 우리의 일상이 제한되고 무너지고 있다. 군대 훈련소 시절 화생방 훈련을 위해 빨간 모자 조교가 던져준 너덜너덜한 방독면을 힘겹게 쓰고 좁은 방에 갇혀 있었던 그 우울한 답답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 시절 군용 방독면의 기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동네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던 가볍고 착용하기 쉬운 천 쪼가리 마스크가 품절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최근 마스크는 역사상 가장 높은 몸값을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유럽과 북미의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로는 크게 세가지가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신분을 감추려고 하는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기 때문이고, 두번째 이유는 그쪽 국가들은 대부분 인구 밀도가 낮아 마스크를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호흡기 질환의 전염이 드물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 이유는 몸이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전반에서 상식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아프면 집에 있는 것이 환자 본인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타자와의 물리적 접촉을 차단해 전염성 질환의 확산 방지에도 효과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아파도 집에서 쉬지 못하고 학교나 회사에 나가야 하는 사회는 그 사회가 얼마나 공중위생에 대해 무지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의 초중고 시절 한 학급에 60명이 넘었는데 거의 모두가 개근상을 받았고, 그것 자체가 의미 있고 가장 자랑스러운 상이었다. 그 시절에는 교통사고나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가 아니라면 아파도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필자의 아내 역시 학교생활에 있어 성실함이 제일의 미덕으로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다. 네덜란드 유학시절 내 아내는 감기 몸살에 걸렸는데 마침 교수와의 레슨이 있는 중요한 날이라며 감기약을 털어 넣고는 무거운 악기를 매고 기어이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아마도 아내는 아파도 교수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성실함과 성의를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내는 학교를 간지 채 한시간도 안 돼 울상이 되어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아내가 레슨 도중 가벼운 기침을 하자 교수는 감기에 걸렸으면서 레슨을 취소하지 않고 학교에 온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 모양이다. 아프면 약속(그 상대가 누구든)을 취소하고 당당히 쉴 수 있는 것이 나의 권리이고 또한 옮길 수 있는 증상이라면 당연히 타인을 배려해 접촉을 피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의무이다. 그 권리와 의무는 그 시절 한국에서 투철한(?) 성실 정신이 부지불식간에 강압되어왔던 우리들에게 슬프게도 낯선 것이었다.

몸이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하고 그렇게 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상식이 일찍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면 지금과 같은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구성원은 집단의 일부로서 튀어도 조직에 해가 되고, 아파서 학교나 회사에 못 가도 조직에 해가 된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 정반대이다. 집단의 일부가 튀면 그 집단은 주목을 받고 대중에게 더 잘 알려질 수 있다. 그리고 구성원이 한명이 아파 학교나 회사에 못 가면 다른 동료에게 병을 전파시키지 않아 생산효율을 저해하지 않을 수 있어 결국 집단의 이익에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논리는 결국 집단의 이익은 철저히 그 구성원의 안녕을 터전으로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신천지와 신종 바이러스의 합작품은 개개인의 안녕이 우선시 되지 못하고 무조건적 성실(혹은 충성)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도 일조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복지를 뛰어넘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파도 쉬지 못하고 학교나 직장에 가야하는 그런 공멸의 길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고려와 보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길거리에서 표정을 알 수 없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 대신 맨 얼굴로 웃고 울고 화내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표정들을 다시 보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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