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코로나19 희생자의 장례식 모습. 연합뉴스

 

 

나라 살림 건실하지 못한 국가
국가 부도나 삶 뒤흔드는 위기 엄습
역병 돌 때 국민 목숨 지키지 못해

이탈리아 현금 뿌리는 포퓰리즘 만연
보건 의료 분야 투자할 돈 바닥나
감염 우려 가족 장례식 조차 금지

 

김병길 주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령을 내린 유럽 각국에서는 식료품 등 필수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런데 벨기에에선 감자 튀김가게, 프랑스에선 와인가게, 네덜란드의 대마초 판매소 만은 문을 열고 있다.

벨기에는 시민들이 식료품점, 약국 방문 때만 외출이 허용되지만 유독 감자튀김 가게는 줄을 서야 사먹을 수 있다. 2008년 북부 브루게에 ‘감자튀김 박물관’이 세워지기도 한 벨기에는 1인당 감자튀김을 가장 많이 먹는 유럽 국가로 알려져 있다.

‘와인의 나라’라는 프랑스는 대부분 상점을 폐쇄하고 40여 가지 예외를 뒀다. 빵집·정육점 등과 함께 와인 가게도 문을 열었다. 최근엔 6~12병 묶음 ‘코로나 생존 와인세트’도 등장했다.

한편 대마초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선 상점 폐쇄를 발표하자 대마초 사재기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대마판매소는 개점을 허용키로 했다.

유럽은 물론 세계 최대 코로나19 피해국이 된 이탈리아는 약국 식료품점 외의 모든 상점을 강제 휴업 시켰다. 그러나 거리의 신문 가판 판매 만큼은 예외다. ‘고령자들을 위한 배려’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이탈리아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2.6%로, EU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인터넷 정보 취득에 익숙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종이신문 열독률이 높은 고령자 인구를 위해 가판대를 열게 한 것이다.

유럽의 우한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경제 중심지 롬바르디아 주에서는 21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3251명, 사망자는 546명 발생 했다. 롬바르디아 누적 확진자는 2만5515명으로 이탈리아 전체 확진자 중 47.6%를 차지했다. 이는 스페인 누적 확진자 수(2만5496명)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한국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롬바르디아의 누적 사망자도 3095명으로 이탈리아 전체의 64.1%에 이른다.

롬바르디아 주에서도 타격이 가장 큰 베르가모는 완전히 ‘죽음의 도시’가 됐다. 하루 사망자가 50명씩 쏟아져 병원 영안실이 넘쳐나 성당에까지 관이 들어찼다. 화장장 역시 넘쳐나는 시신을 감당하지 못해 군용차량이 관을 옮기는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다.

이달 중순 베르가모의 지역신문 ‘레코디 베르가모’는 10개 면의 부고 면을 발행했다. 평소 부고 면이 1~2면이었으나 하루 150명의 사망자 부고를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이 사망하면 지역 신문을 통해 소식을 알리는 문화가 전해 오고 있어 대부분 언론이 부고(Necrologie)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상황은 의료 인프라 누수를 방치한 공공의료 체계가 키운 화라고 지적됐다. 이탈리아 의료시스템은 공공의료와 사설의료로 나뉘는데 공공의료 체계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공무원으로 간주돼 급여가 사설병원 의사보다 낮고, 의사 수도 예산에 연동돼 쉽게 늘리기가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보건 예산도 줄고 있는 추세라 2005~2015년 10년간 무려 의사 1만여 명, 간호사 8000여명이 다른 EU국가로 떠났다.

이러니 현지 방송사 취재진이 병원을 찾아가 ‘인공호흡기가 모자라는데 누구에게 먼저 씌워 주느냐’고 묻자, 의사가 “젊은 사람 먼저”라고 대답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 중 회생 가능성이 낮은 고령자는 치료를 포기한 상황이다. 명색이 G7회원국인 이탈리아가 인공호흡기를 일부러 적게 비치했을 리 없다. 돈이 모자라 투자를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는 국가 채무가 3230조원에 달한다. 경제 규모는 독일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빚은 독일보다 17% 더 많다. 국민 1인당 나라 빚이 5350만원 꼴이다. 그래도 포퓰리즘은 여전하다. 연금 수령 연령은 낮추고 저소득층에게는 기본 소득을 주면서 현금을 두둑이 찔러준다. 나라살림이 만신창의가 됐지만 멈추지 않고 현금을 뿌려대니 보건 의료 분야에 투자할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자가 폭증하자 전 세계 장례문화까지 바뀌고 있다. 이탈리아는 아예 가족 장례식 자체를 금지했다. 자가 격리된 가족이 많아 성직자와 장례업체 직원들에 의해 치러지고 있다. 사제가 죽음을 앞둔 병자를 찾아 기도문을 외우고 성유를 발라주는 병자성사(病者聖事)는 감염 우려로 엄두도 못 낸다.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서는 최근 이동제한령 때문에 목사가 신도의 정례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대신 웹캠을 통해 원격으로 사망 신도의 장례 예배를 집전했다. 직계 가족들은 이 예배 영상을 장례식장 화면을 통해 봤다. 아일랜드 정부는 추모객들이 사망자의 시신에 입 맞추지 못하도록 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원격 장례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전염병이 세계를 강타하면 우리의 일상, 죽는 방식까지도 크게 바뀌게 된다.

중국 베이징시 당국은 4월 4~6일 청명절(淸明節) 연휴를 앞두고 시내 추모 공원과 공동 묘지 등 223곳에서 가족 단위 성묘를 금지했다. 성묘를 하려면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하고, 묘 1기당 최대 3인까지 참배가 가능하다. 베이징시는 되도록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방명록 남기기, 헌화 등 원격 성묘를 권장하고 있다.

나라 살림이 건실하지 못한 국가는 역병(疫病)이 돌 때 국민의 목숨을 지켜내지 못한다. 거대한 재난은 낡은 사회 질서를 작동 불능으로 만든다. 1997년 국가부도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코로나19 재난까지, 우리사회는 세 번째 송두리째 삶을 뒤흔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이 재난을 계기로 우리는 어떤 사회로 향하고 있는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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