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시민을 지키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부기장
울산에 연고는 없지만 고인이 마지막 보낸 곳
유가족, 장례식 조의금 1,500만원 울산시에 기부 

울산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다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고(故) 최성호(47) 부기장. 울산매일 iusm@iusm.co.kr 울산매일 iusm@iusm.co.kr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남편이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다 불시에 떠난 생각을 하면 억장이 무너져요. 남편 죽음이 헛되지 않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조의금을 기부하고 싶습니다.”

지난 19일 울산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 진압 도중 헬기 추락 사고로 운명한 고(故) 최성호(47) 부기장의 아내 이윤경(42)씨는 북받치는 슬픔에 목이 매여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최 부기장은 울산시가 산불 진화를 위해 임차한 민간헬기(헬리코리아) 소속 직원으로 산불 화재 진화를 위해 기장 현 모씨(56)와 출동했다. 당시 울산에는 초속 12~20m의 강풍이 불어 불길을 잡는데 애를 먹고 있던 상황.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헬기는 물을 채우기 위해 인근 회야저수지로 담수작업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최 부기장이 실종됐다.

평소 고인이 근무했던 컨테이너에 마련된 산불진화헬기 승무원 대기실 한켠에는 '비행은 안전'이라는 문장이 쓰여져 있는 달력이 눈길을 끌었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소방당국은 5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수색작업을 벌인 끝에 20일 오후 5시59분께 추락한 헬기 동체에서 최 부기장의 시신을 인양했다. 실종 26시간 만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현장을 지키던 유가족들은 최 부기장의 주검을 붙들고 오열했다. 

울산매일신문 UTV는 헬기 추락으로 최 부기장이 실종된 직후부터 그의 시신을 인양하기까지 이틀을 현장에서 대기하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색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당시 울산시민들은 UTV 방송 댓글을 통해 ‘실종된 최 부기장이 제발 살아만 있어주었음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고, 시신 인양 이후에는 고인의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첫째 아들이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울산시를 방문했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최 부기장의 장례는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치러졌다. 슬하에 둔 1남 1녀 중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첫째(13·최유건)가 상주가 되었다.

갑작스런 사고인데다 헬기 추락 현장 등 어디에서도 고인의 휴대폰을 찾지 못해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리는 데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많은 이들이 마지막 가는 길을 조문했다.

졸지에 미망인이 된 아내 이씨는 애통함을 가눌 길 없는 상황에서도 큰 결단을 내렸다. 장례식을 치루고 난 지난 26일, UTV에 전화를 걸어 장례 조의금 1,500만원을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온 것이다.

이씨는 “남편은 살아생전 코로나19 확산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을 많이 걱정했던 만큼 그 뜻에 따라 기부를 결심했다”면서 “산불 현장에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UTV가 제작한 ‘부기장님,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남편 추모 영상. 최영진 기자 y_oungj@naver.com

 

이어 “장례를 치른 후 UTV가 제작한 ‘부기장님,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남편 추모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s4197GTAxI0)을 보게 되었다”며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우리에게 ‘영웅’이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시고,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해주신 소방관과 시민들의 마음에 이렇게라도 보답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기러기 아빠 흔적에 ‘오열’
경기도에 거주 중인 이씨는 27일 큰아들, 고인의 여동생과 함께 울산을 찾았다. 일주일 전 사고 현장에서 봤을 때 보다 더욱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고인이 생전 근무했던 산불진화헬기 승무원 대기실. 문스테니스장 주차장 한켠에 마련된 회색의 컨테이너가 또 다른 3명의 직원들과 생활해왔던 사무실이었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고인이 근무했던 사무실을 찾아 울산시에서 받은 추모패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유가족.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유가족들이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찾은 곳은 고인이 근무했던 사무실. 문수테니스장 주차장 한 켠에 마련된 회색의 컨테이너가 또 다른 3명의 직원들과 생활해왔던 사무실이었다. 입구에는 ‘산불진화헬기 승무원 대기실’이라 적혀 있었다. 

고인이 된 최성호 부기장은 20년 이상 군인 생활을 하다 2014년 전역했다. 이후 군에서의 헬기 조종 경력을 살려 3년 여 전 ㈜헬리코리아에 입사해 헬기로 산불 화재를 진화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일의 특성상 지역을 자주 옮겨 다녔는데 지난해 11월부터는 쭉 울산에 머무르며 홀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왔다. 특히 정해진 휴일 없이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 비 오는 날에만 쉬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날들이 더욱 많았다.

최 부기장과 함께 근무했던 정비사 임 모씨는 “일할 때는 성실하고 착실하고 꼼꼼했고 가족들에게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그야말로 모범적인 동료였다”며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이랑 수시로 통화하고 여기서 아들 숙제도 봐주며 살뜰히 챙겼는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얘기를 듣던 이 씨는 “산불이 없는 비오는 날이 우리 네 식구 만나는 날이었다. 남편은 같이 있어주지 못해 저나 아이들에게 늘 미안해했다”며 “우리 가족이 여행다운 여행을 간 적이 없어서 이번 5월에는 꼭 시간 내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 다녀오자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라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무실 근처에는 마지막 출동 직전 두고 간 최 부기장의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왔던 최 부기장이 10년 이상 탔던 중고차를 팔고 처음 가져 본 새 자동차였다. 
이 씨는 자동차를 보자마자 “남편이 정말 고생 많이 했다. 덕분에 최근 큰 마음 먹고 이렇게 새 자동차도 사고 새 집도 마련했다”며 “이제부터 가족들과 누려보려고 했는데 사고가 났다. 이 자동차 운전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남편이 너무 빨리 갔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고인의 숙소를 찾은 유가족들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던 고인의 흔적을 마주하자 슬픔을 참지 못한 채 오열했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을 조심스럽게 챙기는 고인의 첫째 아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이어 고인의 유품을 챙기기 위해 평소 숙소로 사용했던 무거동의 원룸도 찾았다. 방에 들어서자 방금 전에도 머물렀던 것처럼 이부자리가 고이 깔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고인의 흔적에 가족들은 한참을 통곡했다.

실종에서 장례까지 엄마 곁에서 우직하게 버텨왔던 아들 최 군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 지 풀썩 주저앉았고 고개를 숙인 채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이 씨 역시 듣는 이도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오열했다.

유가족들은 울산시에서 받은 고인의 추모패와 함께 고인이 울산에서 홀로 생활했던 숙소를 찾아 "이제 집에 가자"며 마지막 인사 건넨 후 눈물이 터트렸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이들을 더욱 비통하게 만든 것은 두 달 가까이 찜질방에서 숙박을 해결했던 고인이 원룸에 둥지를 튼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가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 2월 말이었다.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심각해지자 사태가 잠잠해지면 보자고 했지만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떠났다.

#조의금 1500만원 울산시에 기부
이날 오후 2시 유가족들은 기부금 전달을 위해 UTV 제작진과 함께 송철호 울산시장실을 방문했다. 

이씨는 평소 남편이 코로나19로 인해 생활고를 겪는 저소득층을 많이 걱정했다는 말을 전하며 재난지원금에 보태써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유가족에게 고인의 추모패를 전달하는 송철호 울산시장.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송 시장은 “울산시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다 생명을 잃어서 말할 수 없는 송구스러운 마음인데 오히려 저희를 위로를 해주시고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신다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감사한 마음과 고귀한 뜻이 세상을 빛내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도록 힘쓰겠다”며 답했다.

유가족들은 송 시장과의 만남에 앞서 고인의 수색을 위해 고생한 엄준욱 울산시소방본부장을 만나 “사고 당시 소방 관계자분들이 너무 애써주시고 헌신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며 인사했다.

 

울산시에서 고인에게 수여한 추모패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 구절과 '울산을 지키기 위한 당신의 헌신과 열정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쓰여져 있다. 이남동 기자 skaehd58@naver.com

한편 울산시는 유가족들에게 추모패를 전달했고 이후 명예시민증도 수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울산시가 재난 구호 활동으로 순직한 고인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울산매일신문 UTV는 30일 홈페이지(www.iusm.co.kr)와 유튜브에 기부금 전달과 유품 정리를 하기 위해 울산을 방문한 유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https://youtu.be/JxijQ5IaUOo) 콘텐츠를 방송했다.

신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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