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다의 기준 온전히 주관적이지만
옛 맛의 탐구·레시피 모방 재미 있어
자신만의 노하우로 현 시국 잘 버티길

 

장만석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맛’은 온전히 주관적이다. 그런데 기호식품으로 가면 좀 더 심해진다. 자주 마시는 커피도 마찬가지다. “이 커피의 맛은 어떠한가?” 지금도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쉽지 않다. 하여간, 만만치 않는 가격을 지불하면서, 음미하지도 않고 그냥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최근에야 ‘나만의 기준’을 정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떤 커피나 차(종류, 등급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다)를 마시더라도 이 기준을 적용한다. 바로 ‘내 몸의 반응’이다.

초등학교 봄 운동회 때인가, 어느 잔치 집인가, 큰 솥에서 퍼주는 멸치 향이 가득한 육수, 미리 삶아 말아둔 소면 한 덩어리, 그리고 양념장 한 숟가락. 이것이 전부였던 ‘잔치 국수’의 ‘옛 맛’에 대한 아스라한 기억이 그 것이다. 내 몸은 아직도 그 ‘옛 맛’에 반응한다. 생각만으로도 ‘침샘’이 절로 작동하니 그렇다. 그래서 커피나 차에 대한 맛의 평가기준도 ‘침샘’의 작동여부로 정했다.

사실 그 ‘옛 맛’을 만날 기대를 가지고, 전국 각지, 이런 저런 잔치국수 음식점을 기웃거려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만나질 못했다. 아마도 상상 속의 맛이니 그럴 거다. 지금은 당시 상상치도 못했던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그간 간사한 내 입맛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언제나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이니, ‘잔치 국수’ 고유의 멸치향도 얼마나 강렬했겠는가.

그럼 그 ‘옛 맛’의 탐구를 포기해야하나? 남은 하나의 선택이 있다. 직접 만들어 ‘옛 맛’에 근접해 가는 방법이다. 3년 전 쯤 부터는 집사람에게 부탁하여, 가성비를 무시한 육수(표고, 양파, 대파, 다시마, 무 등에 멸치를 양껏 넣어 만든 멸치육수)로 잔치국수를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2% 부족이었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니 어쩌겠나.

언제부터인가 육수에 된장을 넣으면 어떤 맛이 되겠나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결론은 된장을 좋아하면 강추다. 이름 하여 ‘된장 잔치국수’가 된다. 우연히도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잔치국수 한 젓가락에 시골 텃밭(2018.2.8일자 울산매일신문 기고한 ‘주말 농부’ 참조)에서 수확하여 만든 ‘절임 청양고추’ 한 조각을 올려서 먹어봤다. ‘침샘’이 완전 가동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걸 두고 궁합이 딱 맞는다고 해야겠다. 그것으로 ‘옛 맛’의 재현을 넘어섰다. 새로운 맛으로 접어들었다. 역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점점 발전해, 이제는 혼밥도 문제없다. 육수가 없더라도 멸치가 들어간 국거리(된장국, 김치찌개 등)만 있으면, 이를 육수 삼아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맛이 어떠냐고요? ‘절임 청양고추’가 10% 부족도 채워주니, 질리지 않는 나만의 별식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침샘’을 철저히 자극하는 ‘절임 청양고추’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다. 잔치국수를 좋아하는 ‘삼식이(세끼를 꼬박 집 밥으로 챙겨먹는) 동지’들을 위해서도 혼자만 즐길 ‘노하우(?)’가 아닌 것 같다. 수년 전부터 시골 텃밭에 병충해에 강한 청양고추를 열 댓 그루 심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확량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주위 분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냉동실에 비축도 해보았지만 보관과 소비가 녹녹치 않았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간장에 절임 하는 방법이다. 청양고추를 찐 다음 가위로 적당한 크기로 동강동강 자른 후 ‘맛 간장’과 함께 유리용기에 담아 두는 방법이다.

그런데 진짜 ‘노하우(?)’는 특별히 만든 ‘맛 간장’이다. ‘조선간장1+진간장1+멸치액적1+매실액1’을 끓여서 만들었다. 적은 유리용기에 많은 청양고추를 넣을 수 있고, 아마도 수년을 보관하여도 괜찮을 것 같다. 더하여 ‘매콤 + 짭짤 + 달콤’한 맛이 언제나 ‘침샘’을 자극하니, 하여간 좋다.

요즘처럼 위험한 세월에는 조심조심 또 조심이 최고다. 험한 세상을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극복하자 했던 ‘노자’ 영감처럼 뒷산, 책, 영화, 스마트폰을 벗 삼아 은둔 생활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이 험한 세월이 얼마나 더 갈지 모르겠다. 이럴 때일수록 ‘침샘’을 자극하는 ‘자신만의 별식’이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하여간 “삼식이 동지들이여! ‘침샘’이 조금은 자극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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