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어김없이 피었지만, 전국의 봄 축제들은 줄줄이 취소됐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이처럼 실감난 적이 있었을까. “농담은 다음 4월에 하자” 코로나 바이러스 감영증이 미국 IT 기업 구글이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4월 1일 만우절 장난(April Fools)을 올해는 건너 뛰기로 했다.

‘까치 한 마리 보고 겨울 외투 벗지 말라’는 당부, 이제 그런 당부들과 결별하기 좋은 봄이다. ‘봄’의 어원인 보다(見)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우리가 보는 건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긴 터널 끝의 희망이다. 봄을 뜻하는 영어 ‘Spring’ 또한 ‘샘솟다’, ‘싹트다’, ‘용수철’의 뜻이자 자연의 원리가 무색해졌다.

‘연못가에 새로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서덕출(1906~1940)의 ‘봄편지’에서처럼 강남 제비가 버들잎을 보고 찾아 올 때가 됐다. 하지만 2020년의 그 봄은 ‘빼앗긴 봄’이 됐다.

춘분(春分)이 되면 겨우내 길었던 밤의 길이가 낮과 같아지고,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점차 길어져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접어든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 축제다. 부활절 날짜는 춘분이 지난 후 첫번째 보름달이 뜬 후 첫번째 일요일로 정했다. 따라서 춘분은 부활절 날짜를 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됐다.

올해 부활절은 춘분 후 첫 보름이 4월 7일이므로 일요일인 4월 12일이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다가올 부활절 축제를 맞이하느라 분주할 때다. 하지만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게 됐다.
산수유로 유명한 전남 구례를 다녀간 사람들이 잇따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끌벅적 해야 할 곳에는 매화만 외로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꽃은 어김없이 피었지만 ‘공포의 死월’을 맞이했다. 코로나 공포 속에서도 꽃 전선은 물러설 줄 모른다. 빼앗길 들에도 봄은 왔다. 하지만 ‘빼앗긴 봄’은 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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