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길 주필

‘사회적 거리두기’ 잘지킨 우리국민
 날씨 풀리니 꽃놀이 상춘객 깜짝 북적
 불황여파 내년 신생아 출생 감소 예상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 신조어 등장
 우려했던 가정폭력은 오히려 줄어
 어쩌면 4차산업혁명 본격화 될수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벚꽃길은 상춘객들로 북적였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창궐로 지구촌 나라들이 ‘2m룰’,  ‘한 평룰’,  ‘무정차 룰’을 내놓았다. 미국의 경우 보건 당국의 권고대로 6피트(약 1.8m)씩 거리를 두는 것이 에티켓이다. 가공할 전염병 탓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뚱맞은 말이 우리들에게 익숙해 졌다. 하지만 얼키고 설킨 교제와 거래가 일상화 된 터에 말처럼 쉽진 않다.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퍼거슨 교수팀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선의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란 모든 사람이 외부와의 접촉, 즉 학교·직장·가사 활동을 75% 줄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주일에 네 번 만날 걸 한 번 보는 식이다. 중환자실 입원이 폭증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감염율을 낮춘다. 백신이 개발되거나 상당수 인류가 면역체계를 갖출 ‘알 수 없는 미래의 그 날’까지.
인간의 거리감각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다루는 공간학(proxemics)에 대한 선구적 연구는 4개의 거리 유형을 발견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는 ‘친밀 공간’(0~46cm) 으로 신체적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이다. 그 다음 ‘사적 공간’(46cm~1m22cm)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안쪽으로 들어오는 게 허용되는 거리다. ‘사회적 공간’(1m22cm~3m66cm)은 친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유지하는 거리다. 마지막으로 ‘공적 공간’(3m36cm 이상)은 잘 모르는 타인,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과 유지하는 거리 영역이다.
에드워드 홀의 ‘The hidden dimension’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방역은 친한 사람들과 이별하는 거리를 요구하니 지키기가 쉽지 않은거리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확실한 ‘코로나 백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거리두기가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따뜻한 사회적 관계의 가치를 무시하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물리적 거리는 지키되 심리적 거리는 좁혀야 하는 까닭이다.
2월 말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에 우리 국민은 적극적으로 동참해 오고 있으며외신을 통해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데 한 달 정도가 지나니 때로는 답답함으로, 때로는 생계의 절심함 등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소홀해 질 수도 있는 시기를 맞고 있다. 특히 날씨가 풀리니 벚꽃 축제가 취소되었는데도 꽃놀이 상춘객들로 북적였다.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지만, 외국에서 감염돼 입국하는 확진자가 3배 이상 늘어나면서 사실상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따라 ‘4월 1일부터 모든 입국자는 2주 동안 격리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코로라19여파로 세계 최대 콘돔 생산업체인 말레이시아 카렉스사가 공장 가동을 축소하면서 공급량이 50% 감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도, 중국, 말레이시아의 공장들이 일주일 동안 가동을 중단했다. 자가격리 권고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콘돔 수요가 크게 늘어났지만 생산과 유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공장을 절반 밖에 가동하지 못해 콘돔이 비싸질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감과 전세계적인 확산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는 올해 결혼이나 임신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아마도 2021년 1월의 출생아 수는 이미 역대 최저치로 낮은 2020년 1월 출생아수 2만7,000명(11.6%) 보다도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2021년 태어날 아이 수는 2019년 출생아 수 30만 명보다 크게 줄어든 26~27만 명 정도가 될 것이다. 한 번 떨어진 출산율은 정말로 반등이 어렵다.
코로나 감염병 사태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후 100년 만에 돌아온 문명사적 전염병이자 세기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이 역설적으로 이 전염병 때문에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최근의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힘들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첫째는 전체주의적인 감시 체제와 시민적 역량 강화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둘째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한편 일상이 돌아오지 않을 때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일단 산업적 변화는 불가피 하다. 굴뚝 없는 산업으로 각광 받은 관광산업이 구시대 ‘굴뚝 산업’ 신세가 될지 모른다. 영화계의 극장 개봉 공식은 이미 깨지기 시작했다. 홈트레이닝 등 ‘방구석 산업’은 1인 가구와 함께 성장해 갈 것이다.
식당 서비스 대신 배달과 밀키트(손질만 하면 되는 가정 간편식)도 늘 것이다. 일과 생활의 재편, 소득과 소비의 재조정 등 각자에게 닥칠 파고는 높고 불길하다. 이 파고에 가장 먼저 노출될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도 과제다.
시민들이 재택근무, 자가격리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일각에서 ‘가정폭력이 급증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 됐다. 실제로는 이와 반대로 가정폭력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울 때 가족끼리라도 뭉쳐야 한다’는 가족애의 발로라는 분석도 나온다. 믿을 건 나와 내 가족 뿐 이라는 인식이 어느때보다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코로나19와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와 마스크 관련 사기, 매점매석 등 범죄는 2.5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 신조어도 등장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황당한 상황에 우울해 질 수가 있다. 과거에는 국가적 재난 사태를 시민들이 연대해 이겨냈다. 하지만 코로나의 경우 개개인이 모두 격리된 상태로 대처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며 거리를 두라고 야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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