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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공장의 힘, 공장 없는 나라는 죽는다’ 코로나19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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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06.0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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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면직공장·21세기 중국공장
기적의 생산성 발휘 세상 바꿔
생산시설 해외에 넘긴 선진국들
마스크·방호복도 못 만들어 쩔쩔매

최저임금 현실화·노동개혁 절호의 기회
코로나19로 흔들리고 있는 울산
자동차·조선·석유화학 꼭 지켜내야

 

 

 

 

뜻 밖의 코로나19 위기에 우리는 비로소 제조업의 중요성과 함께 공장 없는 나라는 죽는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은 울산석유화학공단 전경.

 

 

김병길 주필


이륙할 때는 항상 설레인다. 인간은 날개가 없어서 일까. 울산 상공 짙은 스모그 사이사이로 산과 강 그리고 바다와 집들이 보인다. 도심의 섬 학성공원이 한점 푸르름으로 눈에 들어온다.
경상일보 편집국장시절 1994년 고정칼럼<울산통신>에 실린 ‘울산은 모른다’는 제목의 글 도입부다. 칼럼을 더이어 옮겨본다.

멀리 함월산 정상이 ‘빛나리’ 민등머리로 다가왔다 사라진다. 태화강이 어렴풋이 시가지를 갈라놓고 있다. 기수는 서서히 울산 앞바다 쪽으로 선회한다. 처용의 고향 개운포가, 울산화력 굴뚝이 보인다. 자를 대고 그은 듯 잘 정돈된 석유화학 공단과 온산공단이 위용을 자랑한다.
기수는 이미 180도 회전, 북북서로 향하고 있다. 이 무슨 시뮬레이션의 조화일까. 현대자동차와 우람한 수출차 부두가, 현대중공업 도크와 크레인이 성냥갑처럼 축소된 채 창밖을 가득 메운다.
아무리 스모그 띠를 둘렀다 해도 동해는 동해답다. 고래떼는 보이지 않지만 만경창파로 이어진다. 짙푸른 정자해안선이 손짓한다. ㄷ자 왼쪽을 뚫어놓은 것 같은 강동 방파제를 본 듯한데 연이어 문무왕 대왕암, 감포항을 보여주고 기수는 산 그림자를 따라 급히 내륙으로 치닫는다.
간혹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면 이렇게 울산에서 시작되는 우리산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주말에는 서울 집으로 향하는 ‘울총’ 인사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즐겁다. 그들 ‘울총’의 면면을 보면 울산 공단을 경영하고 일구는 주역들이다. 청년시절부터 일터에 묶여 수십년째 가족들을 서울에 떼놓고 울산을 지키는 초로의 신사들이 대부분이다.
한국경제와 공업화의 박동, 그리고 공단의 애환을 함께하는 이들과의 기상대화는 짧은 시간이지만 유익하다.(하략)

26년이 지났다. ‘공장 있는 나라는 살고, 공장 없는 나라는 죽는다.’ 뜻 밖의 ‘코로나19’ 위기에 빠진 세계 각국의 실상이다. 마스크, 식품, 방호복 등을 직접 생산하는 나라들만 시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탈공장 서비스 국가들의 상황은 끔찍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8%로 독일(21.6%), 일본(20.8%), 미국(11.6%), 영국(9.6%) 등에 비해 높은 편이다. 빈사상태에 빠진 서비스업과 달리 우리 제조업은 여전히 공장을 돌려 고용을 유지하고 물건을 만들어 내수를 받치고 수출을 해 나가고 있다.

조슈아 프리먼의 ‘더 팩토리’(시공사 펴냄)에 따르면 18세기 영국의 면직 공장에서 21세기 중국의 스마트폰 공장까지 ‘공장은 발전의 도구이자 현대성을 성취할 수 있는 마법의 수단이며, 인간에게 거대한 댐과 발전소와 철도와 운하를 선물해 우리가 사는 지구의 표면을 바꾸어 놓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다. 현대, 세계를 만든것은 공장이다.

공장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힘으로 가동되는 장비를 이용해 함께 작업하는 조직’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기적의 생산성을 발휘하는 이 조직을 중심으로 사회는 완전히 바뀌었다. 공장은 ‘수백만 명의 남녀노동자가 안심하고 의지할 수 있으면서 버젓한 보수가 보장 되는 일’을 제공했다. 기아를 해결하고 위생을 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했다. 무엇보다 타고난 육체만으로 성실히 일하면 누구나 중산층에 속할 수 있는 사회적 경로를 얻었다.
코로나19 위기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공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줬다. 국가적 위기 때 제조업 기반이 국내에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절감한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정부는 포드, GM 등 자동차 기업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강제하려고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제정된 국방 물자 생산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설계·개발 기술이 넘쳐나도 정작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미국 땅 안에 없었던 것이다. 생산시설을 해외로 내보낸 선진국들은 제조설비를 특정국에 몰아둘때의 위험을 뒤늦게 깨달았다.

코로나 사태로 ‘리쇼어링(Reshoring)’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낮은 비용, 넓은 시장을 좇아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말로 떠났던 기업이 모국에 복귀하는게 리쇼어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안전한 한국’을 부각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경쟁국들이 만만찮다. 베트남등 동남아 신흥국들은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반면 한국은 선진국들이 인하경쟁를 벌일 때 드물게 법인세 최고세율을 27.5%까지 높인 나라다. 3년간 32.8%을 올린 최저임금 탓에 인건비 경쟁력도 낮다.

코로나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한 가장 핵심적 대응은 주력산업과 기업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다. 기업이 무너지만 성장도, 민생도, 고용도 살아 날 수 없다.
지금까지 야당 탓, 이익 단체 탓을 하며 넘어갔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180석을 확보한 거대

여당이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 최저임금 현실화, 주52시간제 보완부터 직무급 도입을 비롯한 노동개혁 등 굵직한 혁신을 시도할 절호의 기회다.

코로나19는 ‘포스트 제조업’ 이라는 환상을 파괴 했다. 물건 없이 목숨도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통감했다. 공장을 보호하는 것이 곧 사회를 보호하는 길이다. 공장 있는 나라는 살고, 공장 없는 나라는 죽는다. 울산은 코로나19로 흔들리고 있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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