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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거여(巨與) 폭주로 조종(弔鐘) 울린 의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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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07.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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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국회 이후 33년 만에 집권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야당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국회 본회의 모습. 연합뉴스

 

김병길 주필

 

 

설마했던 상임위원장 독식 현실화
아무리 많은 시민 광장에 모여도
대의 정치제도인 의회의결 무시 못해


자칭 민주화운동세력이란 민주당
왜 신 독재·신 적폐세력 되었을까
마치 민란(民亂) 재촉하듯 독재로 달려 

 

“독재에 익숙한 사람들을 자유로 향하도록 인도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그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가슴 깊이 와 닿는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따르자면, 독재에 익숙한 사람은 우리 안에서 길러진 야생동물과 다를 바 없다. 정직하고 명시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존경과 보상이 주어지는 자유로운 사회에 분개한다는 것이다.

독재권력은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민중을 부패시키며 민중의 부패는 새로운 민주 권력의 성공을 어렵게 만든다는 마키아벨리의 또다른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과연 먼 옛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 5공 정권은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국정지표를 내세웠지만, 정권 자체가 부정부패의 소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독재정권의 집권당 출신 중에도 1969년 3선개헌이나 1972년 유신체제를 거부하다가 출당당하고 고초를 겪은 인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2012년엔 그 내부에서 “독재자의 딸이 어떻게 대통령 출마를 하느냐”며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한세월이 지나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그가 주재하는 회의들은 새 정치를 토의하는 공론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주위 참모들과 토론을 즐겼다. “계급장 떼고 이야기 해보자”고 대드는 바람에 보좌진을 당황케 할 때도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된 2003년 3월 초 평검사들과 공개토론을 벌였던 일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과 인권을 얘기했다면 검사들은 그의 주변 문제와 확인되지 않은 청탁전화를 파고 들며 ‘맞장토론’으로 몰아갔다.

탈권위와 토론의 자유는 예의와 양식이 수반되지 않으면 방종과 오만이 판칠 수 있다. 사후여론을 보더라도 양쪽 모두에게 큰 점수를 안줬다.

그럼에도 탈권위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소신은 확고했다. “권위, 귄위주의는 다 버려야 합니다. 탈권위의 새 시대로 가야합니다.” 참여 민주정치에 대해 아무리 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여도 대의정치제도인 의회 의결을 넘어설 수는 없다.

설마했던 민주당의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 됐다. 이로써 민주화 이후 1988년 13대 국회 때부터 이어진 의석수에 따른 여야 상임위원장직 배분 전통은 32년만에 깨지고 말았다. 미래통합당은 “1987년 체제가 이룬 의회 운영의 원칙은 깡그리 무시한 의회민주주의 조종(弔鐘)”이라며 “1당 독재의 문이 활짝 열렸다”고 반발했다.

집권당이 상임위원장 전체(정보위 포함 18석)를 싹쓸이한 전두환 정권 시절인 12대 국회 이후 33년 만이자 처음이다. 21대 국회가 협치(協治)와는 동떨어진 여당의 독식과 독주로 시작된 현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민주당은 177석에다 범여권까지 포함하면 190석에 육박한다.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35조원 규모의 3차 추경 단독심사에도 착수했다. 야당없는 여당만의 ‘1당 국회’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특별한 정치적 쟁점이 없는데도 국회가 파행으로 시작된 1차적 원인은 여당의 오만 때문이다. 관행이 야당이 차지했던 법사·예결위원장을 여당이 갖겠다고 일방 선언하면서 균형추가 무너졌다. 그러자 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라는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법사·예결위원장을 야당이 갖는 것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장치로 작용해 온 측면이 있다. 관례대로 의석수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하자는 미래통합당의 요구를 177석의 거여(巨與)는 힘으로 무력화시켰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방적인 승자 독식이 자칭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는 민주당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안처리의 길목을 지키는 법사위원장의 위상은 단순한 상임위원장 자리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 운영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부여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여야 협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당이 야당시절이던 18·19대 국회에서도 법사위원장 만큼은 야당 몫으로 남겨놓았던 것인데 여당이 177석의 의석을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짓밟아 버렸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법사위를 법제위·사법위로 분할하거나 전후반 나눠서 맡자는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법원과 검찰을 관할하는 법사위원장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차지해야 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다. 정권 비리 의혹 수사와 재판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말 정권 방어가 30여년 이어져온 국회 관행과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게 됐다.

공수처 출범 역시 힘으로 밀어 붙일 태세다. 공수처 외에도 헌법재판관 등 국회가 추천하는 헌법기관과 행정부 산하 위원회의 여당 추천 몫도 높이겠다고 한다. 이 기관들의 여야 추천 몫 배분은 공수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자칭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는 민주당이 왜 신(新)독재 신(新)적폐세력이 되었을까. 그들은 한때 유신헌법과 신군부에 저항해 며칠씩 옥중단식을 했다. 그러나 이제 ‘대통령 비난 대자보를 붙이면 유죄’라는 ‘586공안(公安)’의 얼굴로 돌변했다.

민주주의 모습은 이제 외형일 뿐 진짜로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은 1당독재와 다를것이 없어보인다. 마치 민란(民亂)을 재촉하듯 독재집단의 단말마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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