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공포의 중앙정보부에 한 번 다녀온 사람은 몸서리를 쳤다. 장면 총리 공보 담당 비서관이었던 송원영은 30여 년 후에도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의 부인 윤금중의 증언이다.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에 맹장염 수술을 받은 일이 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마취에서 깨어낮는데 그 첫마디가 섬뜩했다. ‘여기가 정보부요?’라고 묻길래 조심스럽게 ‘여기는 서울대학병원인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렇게 되받았다. ‘아냐, 명칭만 그럴거야.’
군사정부가 혁명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법 공포와 함께 중앙정보부(중정)가 공식 창설되었다. 1964년 중정 요원수는 37만 명에 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남한 인구의 약 10%가 중정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주민들과 지역의 동태를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여론조성에 나섰다. 심지어 모든 다방과 술집에 까지 그 촉수가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
그런 중정이 1980년 신군부 집권후에는 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5년에는 남산과 이문동에 있던 청사를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일대 변화를 맞게된다. 중정요원들에게 납치되어 생사갈림길을 넘긴 그는 1999년 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개편했다. 군사정부의 유산으로 여겨왔던  대공(對共)파트를  대폭 축소했다. 당시 IMF사태와 맞물려 대공전문 휴민트(HUMINT·인적정보)또한 상당수 숙청됐다.
북한 핵 위기가 본격화된 2000년대 들어 국정원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모델로 해외 정보역량을 구축하고 산업스파이 감시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신임 박지원 국정원장이 7월 30일 국정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칭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겠다고 밝혀 사나운 국정원 팔자(八字)가 다시 드러났다.
그러나 사전 준비 없이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맡게 되면 국가 안보에 치명적 위험을 초래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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