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로 지원군이 왔다고는 하나 

  모두 광대들 같았습니다. 

  저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 배호)


“지금 서라벌에서 천 명의 지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다음에 공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길흠장군의 제안에 용덕대장군도 수긍했다. 그만큼 어려운 전쟁을 겪어온 탓이었다.

“이번에 선봉장으로 나선 장수는 아직 어린화랑이라 합니다.”

“알고 있소. 어리긴 하지만 믿을 만하니 국왕께서 보내는 것이 아니겠소. 믿고 기다려 봅시다.” 

하문의 지원군이 대야성에 도착한 것은 어스름 저녁 무렵이었다. 

오상치는 대야성 성루 위에서 서라벌의 지원군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 여 명의 군사가 대오를 지어 다가오는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멀리에서 보기에는 하얀 새떼가 무리지어 하늘을 날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소문대로였다. 범상치 않는 기운에 오상치는 굳게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신라놈이라면 누구든 상대해주마.’

오상치는 다음날 벌어질 전투에 대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멀리서 웅얼거리는 듯한 노랫가락이 귀에 거슬렸다. 노랫가락은 쉬지 않고 들려왔다. 한참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오상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귀에 익은 노래였다.

‘저 노래는? 세상에 이럴 수가.’

오상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모르고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가 환두대도를 빼어 공중 높이 치켜들었다.

‘오너라. 신라의 원수 놈들아. 어떤 놈이든지 상대해주마!’

문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초병이 안에서 들리는 수상한 기척에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잠들어 있을 줄 알았던 오상치가 칼을 빼어 들고 허공을 찌르며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상치가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스라쳐 놀랐다. 대장군이 미쳤다면 이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초병은 부관에게 달려가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들고 부관이 달려왔을 때까지 오상치는 계속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장군님 주무십니까?”

오상치는 부관이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칼을 거두었다.

“웬일인가? 들어오너라.”

부관이 안으로 들어가보니 잠옷차림의 오상치가 환두대도를 들고 있었다. 여느 환두대도보다 한 자는 더 기다란 칼을 빼어 들고 있는 오상치의 모습은 흡사 마을을 지키는 천하대장군상 같았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인가?”

“대장군님이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 웬만하면 내일 전투는 안에서 쉬도록 하시지요. 제가 대신 신라놈들과 붙어 보겠습니다. 오늘 새로 지원군이 왔다고는 하나 모두 광대들 같았습니다. 저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다. 이 싸움은 나와 신라 사이의 싸움이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무슨 좋은 방책이라도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방책이라? 방책이라는 게 따로 있을 수 있겠나. 내일은 무조건 지원병을 끌고 온 장수를 노려라. 그래야 믿었던 신라군의 사기가 꺾일 것이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내일 새로 온 적장을 잡는데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오상치는 부관이 돌아간 뒤에도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축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밤새도록 적진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오상치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적진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므로 부하들은 오상치를 깨우지 않았다.

오상치는 잠에서 깨자마자 갑옷을 입고 성루위로 올라갔다. 아침식사도 하기 전이었다. 해는 이미 높이 떠서 신라 진영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오상치는 적진을 바라보다가 몇 번이고 눈을 비벼보았다. 밝은 대낮인데 적진에  모여 있는 적병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두루미떼로 보였다.

“아직 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흠. 이번에 온 놈은 만만한 놈이 아닌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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