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에게 내준 과제 ‘자기 탄생 일기’
엄마와 붕어빵 추억 담은 한 아이 글 감동
일상이 은유가 되는 ‘기록의 맛’ 느껴보길

송광용 신정초등학교 교사

학기 중에 자기 탄생에 대해 쓰라고 주제 일기를 내준 적이 있다. 아이 하나가 써온 걸 보고 껄껄 웃었다.
아이는 자신의 머리가 노랗던 아기 시절에 겪은 이야기를 기록했다. 어느 날 엄마가 아기띠에 아이를 매달고 붕어빵을 먹었는데, 뜨거운 팥이 아이 머리에 떨어졌단다. 엄마는 놀라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밤새 머리에 약을 발라줬단다.
이 짧은 일기를 읽는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예전에 내가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게 떠올랐다. 아기띠를 하고 호떡을 먹다가 설탕이 흘렀는데 아이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말이다.

이 기록에서 감동을 느꼈던 이유는,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이나 실수담이지만 이 속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삶의 귀한 가치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일기를 읽는 순간 아기띠를 한 아이 엄마가 길에 서서 붕어빵을 먹는 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흔한 장면일 수 있지만, 글을 통해 아기 엄마가 줌인 되자, 아기 엄마가 붕어빵을 먹는 원초적인 행위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에 밤새 아이의 머리에 약을 발라주는 엄마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를 엄마한테 받아 든 아이는, 붕어빵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세계의 낯선 것들은 은유로 연결된다. ‘내 마음은 호수요’는 학창 시절에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가장 유명한 은유 중 하나다. ‘마음’과 ‘호수’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은유라는 다리에서 만나면서 관계를 맺게 된다. 그 다리에서 개나리와 노란 전구가, 달과 쟁반이, 분수와 종소리가, 폭설과 계엄령이 만난다. 은유는 세상에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들을 서로 상관있는 대상으로 만든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붕어빵은 삶의 은유가 될 것이다. 붕어빵은, 엄마가 먹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먹기도 하는 존재라는 걸 은유하게 될 것이다. 또 아이에 대한 엄마의 염려와 걱정도 은유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삶의 은유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는 세계와 더 깊고 친근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친근한 세계는 아이에게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매서운 바람에 휘청거릴 때, 걷기에 험한 길을 만날 때도 그 너머의 희망을, 친근하고 따뜻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낯선 대상에 나의 이야기가 담기면 그 대상은 삶의 은유가 된다.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행복의 실마리를 찾기 쉽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조개껍질을 보고도 친구와 맹세하던 우정을 떠올리고, 털실을 보고도 상대를 온기로 보호하길 바라며 목도리를 짜던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다가 일상에서 겪은 이야기를 자주 쓰는데, 궁극적인 목적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훗날 아이에게 해주기 위해서다. 언젠가 아이가 직접 호떡을 들고 먹을 수 있게 됐을 때, “설탕이 뜨거우니 조심해야 해. 네가 아기였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이야기를 건네면 아이의 세계에 ‘호떡’이라는 일상의 은유 하나가 추가될 것이다.

아이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자신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자신이 그 이야기 속에서 자라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걸 깨달은 아이는, 사소한 것에서도 쉽게 행복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이건 비단 아이만을 위한 건 아니다. 일상의 기록은 내 삶의 은유를 늘리는 확실한 길이다. 기록되지 못한 일상의 의미는 쉬 잊힌다.
그래서 내가 맡은 학급의 아이들에게도 일상을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이들이 일상의 은유가 하나씩 늘어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그 일은 글 솜씨도 향상시킬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소한 일상을 풍성한 의미로 가득 찬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어른들도 사소한 일상을 기록하고 그 과실을 맛볼 수 있길 바란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것들과 하나 둘 관계를 맺다 보면 세상이 우리에게 조금은 더 살만한 곳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게 바로 기록의 마법이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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