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역협회 울산지역본부장 김정철  
 

 

불확실시대 한-일 관계도 많은 가능성 열어둬야 하지만
양국은 자신이 보고 싶은 곳만 바라보며 사사건건 대립
미래 세대 위해 우리가 먼저 유화적 사인 보내면 어떨까
 

 

집 근처에 있는 일본식 라면집은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와 메뉴판이 한글과 일본어로 병기되어 일본풍이 강한 음식점인데 여전히 찾는 손님이 많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신오쿠보 한인타운은 한류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타고 세대를 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 불붙은 이번 3차 한류는 기존의 드라마와 K팝은 물론 소설과 음식, 화장품 등 소비재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생활 속 모습과는 달리 한·일 양국의 정치적 긴장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자산 현금화 절차가 시작되면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SNS 등 온라인을 통해 양국의 갈등이 확대 재생산 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잠깐 시각을 바깥으로 돌리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적, 물적 교류가 단절된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계속된 미·중의 갈등은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무역분쟁에서 시작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이제 경제적 문제를 넘어 문명과 인종이라는 세계사적 대전환으로 보는 시각까지 생겨나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미·중 갈등을 지켜보며 중국의 체력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한·일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은 거대한 소비시장에 자본과 군사력까지 갖춘 G2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큰 체격에 비해 주변국과 병존할 수 없는 미성숙한 패권의식을 보여주고 있어 주변국과의 상호공존에는 의문이 생긴다. 일본 또한 과거보다 힘이 떨어졌지만 역시 패권의식이 있어 중·일은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경기침체와 코로나19로 인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의 존재를 중심으로 한·일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서로 예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한중일은 상호보완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 뜻대로 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때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일이 한 목소리를 내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일은 자신의 입장에서 서로 보고 싶은 곳만 바라보고 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지금은 폐기된 천동설의 왜곡된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결국 지금의 한·일간 대립은 주관적 인식의 차이에서 출발한 것이다. 인지심리학에 의하면 일본은 집단주의가 강하고 한국은 관계주의가 강하다고 한다. 이를 한·일 관계에 대입해 보면 한국은 관계를 중시해서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고 일본은 과거 배상으로 끝난 문제니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는 자기방어와 합리화의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런 팽팽한 대립으로 결국 작년 상반기에 일본이 수출규제라는 자충수를 두어 우리를 잠시 혼란에 빠트렸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은 전범기업의 국내자산 현금화 절차 돌입에 따라 이번에 두 번째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보복 조치는 피해여부를 떠나 사사건건 우리의 뒷다리를 잡으며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최근 일본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WTO사무총장 출마에 공식적인 반대 목소리를 냈고 앞으로도 남북한 문제에 돌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을 생각하며 까다로운 이웃이 있다고 애써 무시한 채 넘어갈 일도 아니다. 한류를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보면서 한·일 양국의 미래 세대에게 공동번영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현재는 한·일 양국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새로운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일본발 리스크를 줄이고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펜데믹과 경기침체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에게 적절한 시기에 우리가 먼저 유화적 사인을 보낸다면 일본이 어떻게 나올지 반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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