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 연재소설】 계변쌍학무(71)

 

그림:배호

국왕의 사신을 참수한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고구려왕세자의 주변에는 말리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성격이 포악하고 즉흥적이라는 증거였다.

석가치는 서라벌을 떠나오기 전부터 고구려 왕세자의 성품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석가치는 어렴풋이나마 앞날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군주가 포악하면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이 이치였다. 포악한 것과 용맹한 것은 달랐다. 석가치는 이미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예감하는 바가 있었다.

군사들의 호송을 받아 중앙탑에 도착한 석가치는 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절을 올리는 모습이 괴이해 고구려 군사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자신이 입은 장삼끝자락을 붙들고 머리에 뒤집어쓰며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한 번 바닥에 엎드린 다음에는 한 참 시간이 지난 다음 일어나 똑같은 동작으로 절을 올렸다. 고구려군사들은 신라의 절하는 방법이 이상하기도 하다며 싱글싱글 웃기까지 했다.

석가치는 절을 하며 장삼으로 머리를 뒤집어 쓴 뒤 품 안에 품고 있는 종이에 싼 학의 깃털을 꺼내어 땅을 파고 묻었다. 땅을 판 자리는 표시가 나지 않게 곱게 다듬어놓았다. 세 번 절을 마치고 난 석가치는 한 걸음 물러나 목을 내밀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 말을 했다.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한 여인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과 서라벌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 내가 죽은 다음 새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만 새가 날아와 운다면 이곳은 신라의 영토가 될 것이다.”

고구려 군사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다. 석가치의 목이 땅에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갑자기 먼 곳에서 바위돌이 구르는 듯한 천둥소리가 구르르르하고 울렸다. 
 


왕세자는 활을 뽑아 들었다.
망설임없이 화살을 장끼에게 날렸다. 
바로 바닥에 떨어질 줄 알았던 장끼는 
곧장 석가치의 무덤으로 날아갔다. 

함께 석가치의 죽음을 목도한 신라의 사신들은 가잠성에 돌아와 비보를 전했다.

“고구려와의 연합은 물 건너갔다. 내 이 원수를 꼭 갚아줄 것이다.”

신라의 왕세자는 석도를 포함한 화랑들에게 맹세를 하게했다.

“석가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석가치의 유언은 우리에게 내린 명령이나 다름없다. 국원성을 신라의 영토로 만들자. 자 모두 칼을 뽑아라.”

스무 명의 화랑들이 환두대도를 뽑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햇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찬란한 검광을 만들어냈다.

“국원성을!”

“신라에!”

왕세자를 포함한 스무 명의 화랑들은 매서운 눈길로 북쪽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장 국원성을 치러갈 수 없는 자신들의 입장이 원통했다. 이곳에서 당장 고구려군과 맞붙는다면 남쪽의 전장이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 

석가치의 주검은 사흘 후에 중앙탑에 가까운 산비탈에 묻혔다. 가시덩쿨과 무성한 들풀을 걷어 내고 땅을 파니 뽀얀 황토흙이 나왔다. 일꾼들은 비명에 죽은 사람이지만 묘 자리 하나는 명당자리를 찾아간다고 한마디씩 했다.

석가치를 묻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중앙탑의 꼭대기에 커다란 장끼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석탑을 지키던 군사가 즉시 고구려의 왕세자에게 보고했다.

“뭐라구? 탑 위에 새가 날아와 앉아 있다고?”

왕세자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라벌에서 유명하다는 예언자의 목을 치고 나서 마음이 께름칙하던 참이었다. 석가치의 목을 친 것도 사실은 마음속에 감추어 놓은 불만을 은근히 터뜨리기 위해 한 짓이었다.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치던지 아니면 단독으로 신라를 치던지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보고 싶었던 왕세자는 국왕의 명령에 은근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불만이 애꿎은 석가치에게로 향한 것이었다. 왕세자는 보고를 받고 바로 말을 달려 중앙탑으로 갔다. 가면서도 죽음 앞에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던 석가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귀청을 울렸다.

‘이곳은 신라의 영토가 될 것이다. 이곳은 신라의 영토가 될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 고구려에 내가 살아있는 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왕세자는 말을 달리면서 혼자 소리를 질렀다. 중앙탑에 도착하니 여러사람이 탑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끼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세자가 도착하자 구경꾼들은 자리를 비켜섰다. 장끼는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말거나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그 자태가 사람을 무시하는 듯했다. 계속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석가치가 묻혀 있는 산비탈 쪽이었다. 사실은 석가치의 무덤을 만드느라 없어진 수풀 속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장끼였다. 

“고약한 놈.”

왕세자는 말에서 내려 활을 뽑아 들었다. 망설임없이 화살을 시위에 매겨 장끼에게 날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장끼의 몸통을 꿰뚫었다. 바로 바닥에 떨어질 줄 알았던 장끼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비탈로 날아갔다. 화살을 꽁무니에 매단 채였다. 곧장 석가치의 무덤으로 날아가 봉분에 머리를 처박았다.
<계속>

김태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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