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진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로그래머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성경의 요한묵시록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그 속에 묘사된 인류 최후의 전쟁의 강렬한 상징성으로 인해 이제는 세상의 끝을 뜻하는 공포의 단어로 쓰인다.

그리하여 탄생한 종말 문학에서부터 또 하나의 스토리 예술인 영화에서도 세상의 종말은 굳건한 장르가 되었고, 종말 이후의 세상을 묘사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 영화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과거에는 SF의 서브 장르로 주류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이 소재가 최근에는 두드러지게 각광받고 있다. 식량이 부족해진 근미래의 황량한 풍경을 다룬 <인터스텔라>(2014), 물의 독점이 권력으로 이어지는 <매드맥스>(2015), 얼어붙어버린 지구를 달리는 <설국열차>(2013)와 좀비가 점령한 잿빛 세상을 그린 <살아있다>(2020)와 <반도>(2020) 등등.

흥미로운 것은 세상의 종말을 가져온 원인에 관해 무게 중심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8-90년대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의 주된 소재는 외계인의 침공이나 과도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불러일으킨 참사였다. 인간이 만든 로봇이나 AI(인공지능)가 오히려 인간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상상력을 더해 흥미진진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밀레니엄조차도 다소 싱겁게 극복한 인류에게 21세기의 공포는 그 양상이 달라졌다. 기후의 변화, 전염병의 창궐, 부의 양극화로 인해 더욱 각박해져 가는 인간성에 관한 대중의 두려움이 대중문화로 표출되고 있다.

영화는 재현(representation) 행위로서 현실의 세계를 재구성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가 동시대 예술이라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현재 대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이 장르영화의 주된 소재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래서 영화에서 읽을 수 있는 현실의 교훈도 있는 법이다. 바이러스가 위협하고, 전례 없는 홍수가 나타나고, 이상기온으로 벌레들이 들끓는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켜야 하는 인간성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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